애칭이 사라졌다

우리가 연인임을 증명하는 달콤한 단어

by 샐리

얼마 전부터 그가 나를 '너'라고 지칭한다. '너'라는 말은 우리가 사귀기 전, 문자를 나눌 때 몇 번 들었을 뿐. 4년 가까이 만나 오면서 우리는 늘 서로를 꼭 닮은 귀여운 캐릭터를 애칭으로 불러왔다. 그건 우리가 연인임을 증명하는 아기자기한 단어였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애칭을 부르는 것이 더욱 어색해졌다고. 나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지인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상대에게 마음이 식으면 가장 먼저 입에서 애칭을 떼버린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는 내게 마음이 많이 식었다고도 덧붙였으니까.


애칭은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이다. 그가 나를 애칭으로 부를 때, 그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아서 발음했는지 안다. 그건 단순히 애칭에 그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밥을 먹었냐고 물어볼 때마다, 일상의 사소한 매 순간순간 늘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연인 간의 애칭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걱정하고 떠올리며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끝없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작고 귀여운 동물도 아닌, 죽고 못 사는 연인도 아닌, 그렇다고 철저히 남이라고 할 수도 없는 '너'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대명사. 수많은 타인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로의 특징을 꼭 닮은 고유명사를 벗고,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나라는 알맹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렇듯 관계 회복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힘들고, 슬프고,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예전과 같지 않고, 어쩌면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가야 되며,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애칭은 사라졌지만 그 애칭을 만든 기억, 나눈 순간, 추억과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귀여운 애칭이 아니라, 그 애칭이라 불리는 단 한 사람이다. 애칭 속에 담겨 있던 그 사람의 광활한 마음이다. 그 귀여운 애칭 하나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무수한 애정말이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늘 낯간지러웠는데, 실은 우리 둘 다 애칭을 부르면서 매 순간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오늘도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매일 당연하게 발음하고 외쳤던 그 이름이 너무나도 멀어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저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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