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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은 Jan 27. 2021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불안한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그는 스스로 자기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마을에서 똑똑한 아이들은 반드시 신학학교에 가야 하고, 그 주인공이 한스가 된다. 그럼에도 한스는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한 공부를 해낸다. 그것도 아주 잘. 한스는 전교 2등이라는 성적으로 신학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충분히 스스로 숙고해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동반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기에 가야 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도 당연하다. 한스는 자신의 불안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몰랐다. 모르는 만큼 흔들렸다.  

단적으로 주변인들과의 조우에서 한스의 불안감은 또렷해진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소문이 도는 마을 목사와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를 보며 일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한스가 생각하기에 신에 대한 경외심이 아닌 현실의 '라틴어 성적' 따위에 집착하는 목사는 일반적인 목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플라이크가 인식하는 현실 역시 한스가 생각하기에 모범적이지 않다.

자신의 길에 대해서 흔들릴 때마다 '우연히' 목사와 플라이크를 만나게 된다. 한스가 체득해야 할 현실과 배치되는 인생을 사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스의 불안감을 더욱 높이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한스는 그럴 때마다 불안감을 동기로 삼는다. 더욱더 가학적으로 학업에 자신을 갈아 넣는다.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신학학교에서 만난 하일너 역시 한스가 믿는 인생의 정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자신과 하일너를 분리하는 선택을 내리지만, 이 역시 병적인 우울증을 낳을 뿐이다.

혼란이 극에 달한 한스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보통 주인공이 그동안 꽁꽁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면서 비교적 편안한 결말로 이르는 반면,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학업에 대한 일말의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한스에게 생긴 변화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소년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사과를 짜기도 하고, 기계공이 되어 톱니바퀴를 만지며 일견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엠마가 준 상처, 동료 기계공들과 끊임없이 자기를 분리하려던 한스의 생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유도 모른 채 호수에서 목숨을 끊었던 평범한 소년 힌딩어처럼.

대다수의 주변인은 사회가 정해준 길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불안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유약한 존재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소년들은 그 몫을 버거워한다. 이 소설은 소년을 버거운 무게로 누르는 사회를 수레바퀴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수레바퀴는 돌고 있다. 버거운 소년들의 괴로움도 여전하다.  

"선생들은 언제나 죽은 학생을 살아 있는 학생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잠시나마 돌이킬 수 없는 모든 삶과 젊음에 내재하는 소중한 가치를 가슴 깊이 되새겨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년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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