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 말고 결혼주의자
우선 나는 효심이 깊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댁에 무엇을 바라고 행동하는 성격도 못 된다.
허나 결혼 생활 10년, 별 일 있지 않고서야 매일 영상통화를 거는 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전화포비아가 있다고 느낄 만큼 전화보다는 메시지로 대화하길 좋아하는 내가 영상통화라니. 습관처럼 하던 영상통화를 인지하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지역 커뮤니티에 시댁에 관한 글을 보고서 알았다.
‘시댁에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드리라는데 미치겠어요.’
‘시댁에 얼마 만에 연락드리세요?’
댓글을 읽어보면 대부분은 연락의 텀이 길었고, 전화 연락에 대해 엄청 회의적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니 나도 전화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즐겁게 전화를 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나의 심정 변화가 어땠는지 회상해보려 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전화 연락에 예민하신 편이다.
결혼 전, 추석 전날 명절 잘 보내시라고 연락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추석 당일 날에는 전화를 안 했다고 한소리 하셨다고 한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당장 전화를 드리긴 했다.
그랬더니 혹시 남편이 말을 전했냐며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전해 듣고 연락드리는 거 아니라며 여우주연상급 연기를 펼치고는 생각에 잠겼다.
‘결혼 그리고 전화’
대부분 결혼 후에 며느리들이 많이 겪는 고충 중 하나인 것 같다.
전화 연락이든 찾아뵙는 일이든 사실 원가족이 아닌 이상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속 불편한 마음으로 살면 그건 내 손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차피 불편할 거 마음을 조금씩 고쳐먹어 보자.
그렇게 시작된 '시댁 스며들기 프로젝트'
시부모님의 러브스토리를 듣는 걸로 시작을 했다.
두 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좀 더 사랑할 수 있겠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고, 무뚝뚝하신 아버님은 그저 듣고만 계시고 어머님은 한참 동안 연애 이야기를 해주셨다.
두 분은 많이 사랑하셨던 모양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멀리 도망가서 살 정도였다고 하니 그렇게 이룬 가정에 얼마나 많은 애착이 있을까 싶었다.
‘빈 손 빈 몸으로 나와서 이만큼 일궜다.’
수 십 번 내뱉듯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저 말씀에는 그동안의 고생과 원망과 한이 담겨 있었다.
두 분은 그저 자식만 보며 달려오셨다.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할 시간적 여유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라도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달려오셨으리라.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어도 끝없는 자식 걱정에 마음껏 누리며 살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시부모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다시 전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부모님 마음 안에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양한 취미 활동과 SNS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하며 살고 있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아닌 분들도 계시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활동도 줄어들기에 외로움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식들의 연락에 늘 목말라 계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는 전화로 드릴 말씀도 없고 전화를 드리고 싶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를 빌미로 영상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매일 통화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신기한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나마 전화로라도 효도할 수 있다는 거에 스스로 조금이나마 하찮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매일 시댁에 영상통화를 하다 보면 다양한 에피소드를 부모님께 늘어놓게 된다.
그래서 서로 공유하는 게 많아지다 보니 한 번은 이런 일도 생겼다.
어느 날 아버님과 다투신 어머님이 우리 집에 가도 되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그렇게 어머님을 맞이했다.
뭔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기가 생긴 것 같았고 그렇게 끈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는 시누이보다 나한테 연락을 하고 싶어 지더라 하셨다. 사랑한다는 말 만큼이나 짙게 느껴졌다.
그렇게 10년 간 신뢰를 쌓아나갔던 것 같다.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노력했던 부분은 작은 일에도 반드시 감사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과 전화, 그뿐이었다.
시부모님이 안 계셨으면 내 남편도, 내 아이들도, 내 가정도 없었을 테니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늘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끔 잊을 때도 있지만 그래서 노력해야만 했다.
시댁에 완벽히 스미고 나면 많은 것이 쉬워진다. 오히려 거절도 쉬워진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친정부모님에게 그러듯 말이다. 그래서 스미는 일은 중요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를 사랑하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진짜 여우는 곰의 탈을 쓰고 여우 티를 내지 않고 곰의 연기를 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짜 여우라 생각한다. 그렇게 매사에 좀 여유를 갖고 행동하면 그나마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친정 엄마로부터 전화가 신나게 울려댄다.
시댁 챙기느라 자주 잊어버리는 친정 집.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물으면 “그냥”이라는 엄마 말에 괜스레 죄송해진다.
역시나 어른들께는 전화만 한 효도가 없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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