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언니가 7급 군무원에 합격했던 날

이 결혼의 최종 목적은 남편의로부터의 독립

by 홍은채
출처 pinterest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나의 대답은 "YES"



우리 둘째 같은 학교 친구 엄마. 나보다 7살 많은 언니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원래부터 친했던 사이는 아니고 종종 마주치던 학부형 관계였는데, 그 집 아이가 우리 둘째를 많이 좋아한다며 볼 때마다 얘기를 하시길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주하던 언니였다. 어느 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살기 어떠냐며 물으시길래 개인적으로는 너무 만족한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더니 얼마 지나고 이사를 왔던 것이다.

이사 후에 하는 말이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 집 좋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다며, 막상 이사오니 더 마음에 든다고 고마워했다.


아무튼 그 언니네가 이사오던 그 시기에 알고 보니 언니는 7급 군무원 필기에 합격한 상태였고, 나는 예전에 남편이 오랜 기간 군무원 수험생활을 했었기에 이야깃거리를 나누고 했었다.

좁은 집에서 두 아이를 보며 정말 몸을 갈아 넣어 공부를 하셨다는 것에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고, 그 언니 역시 남편의 고용 환경에 불안해하며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이사 오고 얼마 뒤 면접이 있었는데 면접을 망쳤다며 많이 힘들어하셔서 내가 커피를 사드리겠다고 하고는 카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참 감사하게도 내 덕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면서 그렇게 또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실은 나도 마음속에 늘 자유로운 영혼과 안정적이고 싶은 두 마음이 평생을 싸워왔기에 군무원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었다. 왜 하필 군무원이냐고 물으면, 남편이 직업군인으로 오래 생활을 해왔기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많이 가까워져서 같이 술자리도 하고, 위로도 해드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은근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올라왔기에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하곤 했다.



하지만, 군무원은 남편의 꿈이었기에 남편의 지원을 받으며 수험생활을 그것도 '내가' 하려니 묘하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고, 이게 또 얼마나 긴 호흡으로 달려야 하는지도 알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긴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며칠 뒤, 최종 합격 발표가 있던 날. 마음 갈피를 못 잡겠다며 재도전은 없고 혹여나 떨어지면 정말 이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언니와 하루종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내가 점심을 사면서 "합격하면 맥주 사주세요."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불안함을 잠재웠음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위로가 되고 싶었고, 마음으로는 부디 합격하길 바랄 뿐이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하교를 하고 놀이터에서 노는데 벌벌 떨던 언니가 합격자 공고를 열었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환호했다. 전체에서 2명 뽑는 걸 그 안에 들어간 것이다.

남의 기쁜 일에 이렇게나 눈물이 흐르다니, 조금은 쑥스러워서 눈물을 삼켰다.

다음 날 저녁에 언니는 약속대로 호프집에 데려가 주셨다.





그 후 얼마 뒤부터 현재 나는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왜 그토록 도전에 목을 매냐 할 수도 있지만, 이 결혼에서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다. 헤어짐과 독립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을 목숨만큼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남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 나를 제대로 건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경제적 독립이 아닐까 싶었고, 심지어 남편의 꿈이었기에 그걸 내가 대신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시작엔 늘 거창한 이유를 달기도 하는데 사실 모르겠고, 그냥 또 한 번 달려보려고 끈을 묶는 중이다.


반신반의하던 남편이 그래도 요즘 은근히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고맙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함께 그리고 각자 파이팅이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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