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마음을 먹으면 아이가 꼭 아프다.

남편이 방황할 동안 너는 무엇을 했냐고 물으신다면

by 홍은채








결혼 전에는 엄마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감히 가늠하지 못했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역할은 아주 어릴 적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될 거라는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심지어 운동의 '운'자도 제대로 모르던 뚱뚱이 엄마에게 감히 보디빌딩대회라는 건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오전 그리고 저녁 합 5시간 정도의 기본 운동 시간을 가져가려 노력했고,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겠다 싶었던 날은 새벽에 기상해서 강변을 달리거나 스텝퍼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아주 명확한 이유는 없었지만, 이미 나는 그 기차에 탑승해 버렸다.



식단을 챙기는 일이 힘들었냐 물으면 '아니요'


한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선수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치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입맛이 돌 여유조차 없었고 그렇게 자학 아닌 자학의 시간을 지내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는 성취감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 꼬박 채워갔다.



PT도 없이 혼자 거의 독학으로 해내야 했는데 어쩜 그리 배짱은 좋았는지, 운동하다가 도저히 퍼포먼스가 안 나오면 옆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보고 찾아보고 알아보고 그렇게 나를 수정해 나갔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안다.

엄마의 레이더가 온전히 본인에게 있지 않으면 경고가 들어오는 센서가 있음이 분명하다.


멘탈이 바스러지는 건 부족한 돈도, 가족들의 눈치도 아닌 아이들이 아픈 때였다.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 준비까지 동시에 하고 있었기에 대회 준비를 위한 운동과 식단은 필수적이었고, 필기 공부, 실기, 연수, 실습까지 여정이 험난했다.


워낙 어릴 때라 감기 종류는 나을만하면 또 걸리고 무한반복 루트였지만, 다른 것보다 아이가 유난히 보채는 날이 많다거나 하는 건 분명 엄마가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음을 아는 센서 작동의 힘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좀 크면 나으려나 싶지만 뭐 여전히 비슷한 걸 보면 역시나 '관 뚜껑 덮을 때까지는 자식 걱정한다.'라는 부모님 말씀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일 것 같았던 일을 여러 개 동시에 하다 보니 아이가 아프던, 다른 이유에서건 멘탈이 무너지면 그 여파가 꽤 오래갔다. 운동에 집중도 안 되고, 그만둬야 하나 싶은 생각도 불쑥불쑥 올라오고......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에 그저 뭐라도 할 수 있는 걸로 스스로를 불태우고 싶었던 것 같다.

시 소속 여자 선수들이 시즌오프를 한 시점에서 열린 대회라 초짜인 나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진 거였지만, 이번 대회는 도에서 주최하는 거다 보니 규모가 컸다.

'무대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만들어서 올라가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을 수는 없었나 보다.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서 내가 가장 잘하는 '떨리지 않는 척'을 하며 포즈를 취했고, 그 순간에 너무나 슬프게도 그 자리가 내가 생각했던 자리가 아님을 직감했다.


관객석에 남편이 두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데, 하염없이 지쳐 보였고 그 상황은 갑자기 영화가 엄청 느리게 재생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선수의 삶을 바랐던 게 맞나'


***선수라고 호명되는 낯선 광경 안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는 나의 의상은 심지어 비키니.




불편했고,

미안했다.







극한의 노력을 해보는 경험이 나에게 남긴 게 굉장히 클 거라는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4위라는 아쉽지만 그래도 상장이라도 건진 대회는 막을 내리고, 폭주기관차는 서서히 고장 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이후로 나에게는 달릴 때 몰랐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뒤늦게 찾아왔다.


엄마가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은 단순한 희생 이상의 쓸쓸함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들 다 키워놓고 해라.'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그때는 그렇게나 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도 조금씩 알 것 같고......




엄마인 나는 여전히 다양한 도전을 하며 살지만, 그 도전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적어도 나의 부재가 느껴질 정도가 아닐 만큼만 하며 산다. 쉽게 말해 '적당히, 눈치껏'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가 아주 많이 필요한 일들은 못하고 있지만,

또 언젠가 응축해 놓은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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