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째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다.
아무것도 못하고 이대로 잠식될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가 이 늪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고민 끝에 이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마음먹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는 변명으로 글을 시작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던 고등학생 시기와 그 이후까지, 나는 ‘술’을 저주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술에 취하면 돌변하는 모습을 저주했을 것이다.
엄마는 답답할 때면 이렇게 비꼬며 말했다.
“이 집은 술씨로 성을 바꿔야 돼!”
유전적 요인이라는 것이 알코올도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평생 일 안 하고 술만 드시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전자는 애석하게도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 전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술과 사투를 벌이는 일에 써야 했다.
4남 1녀인 할아버지의 자식들 중 3명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일찍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건 사진 속 멀끔한 할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을 시절을 지나오셔서 일까. 거기에 가난과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해서였을까. 노름, 술, 여자를 좋아하면서 일도 안 하고 그렇게나 애를 먹였다는 이야기를 아빠의 신세한탄 시간마다 지겹게 들었다. 모두가 그를 원망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다른 걸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까. 나는 꽤 오랫동안 오열하고 분노하면서 스트레스에 맞섰다.
어제 문득 우울의 유전이라는 그 재수 없는 키워드의 실마리가 풀리나 싶은 상상을 했다.
자식은 부모의 꽤 많은 점을 닮는다. 외모나 기질, 성격 여러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중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까지 꽤 많은 것을 학습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러키’를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분노로 휩싸이는 사람이 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혹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자식은 그들이 보는 작은 세상 속에서 커다란 존재인 부모의 전부를 배운다.
매일 마시던 맥주 한 캔에 딸아이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알코올 중독 되려고 그래?’
덜컥 겁이 났다.
나 역시 공황장애를 지나 지독한 우울의 터널을 지나 보내며 살고 있던 터라 더 이상은 우울의 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운동을 했고,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 분노하고 오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다가 무기력한 나에게 화를 내며 살기도 한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안녕하세요. 작가 홍은채입니다.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들어보셨을까요?
저는 겨울만 되면 죽은 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인 데요. 극복해 보고자 다양한 노력을 시도해도 너무 힘들다 느끼던 중, 이 이야기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년부터 일어났던 예상치 못한 굵직한 사건들은 여전히 삶을 관통하고 있고요. 이따금 제게 극심한 불안의 날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과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물론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저는 뜨거운 여름을 사랑합니다.
유일하게 제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 같습니다. 그 여름이 올 때까지 이 글의 여정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아픈 이야기라 덜컥 시작하기에 겁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합니다.
매주 화요일 돌아오겠습니다.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