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개인주의자
살아가면서 필요한 다양한 기술 중에는 겪어 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거절을 잘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그 불편함에 따라오는 에너지 누수를 겪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거 할래? 말래?
이렇게 묻는 질문에는 YES 아니면 NO로 곧잘 대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훨씬 더 어릴 적에는 그것조차 힘들었던 것 같은데,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는 '예, 아니요'의 결정은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늘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런 류의 선택 혹은 거절이 아니었다.
"네가 꼭 좀 해줬으면 좋겠어..."
"힘들더라도 부탁 좀 할게."라는 류의 말들이었다.
다행히도 돈 문제에는 얽힌 적이 없었으나, 그렇게 그들은 나의 시간과 노력을 가져가려 했다.
과할 정도로 매사에 진심인 나는 유난히 그런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었고, 어느 자리이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나를 찾는 곳이 많아지면 거기서 성취감과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 자체의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한 개를 내어주면 두 개, 세 개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 덫에 빠지면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면 화가 났고 그 화는 자책으로까지 이어졌다.
내 인생을 꼬이게 만든 큰 사건들에는 이런 불편함 속에서 했던 잘못된 선택이 있었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긴 하지.'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로 시작했던 일들은 반드시 내 생활 전체를 흔드는 상황을 몰고 왔다.
그걸 알면서도 매번 비슷한 상황을 끌어안게 되는 나를 보면서 결국은 올바른 거절을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에 앞서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를 떠올려 보면 나는 함께하면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외로워질 용기'가 부족했던 거라는 걸 이 시점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저것 내어주다가 정작 나에게 중요한 일을 못하는 사람
그렇게 인생을 꾸리고 싶진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거절을 잘하자. 나를 필요로 하는 상대를 미워하게 되는 지경까지 가지 말자.
분명 내가 여러 자리에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감사해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반드시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거절이 가장 어려웠던 건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 중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
대학원에서 교수에게 노동을 착취당했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을까.
졸업장도 필요 없다며 도망쳐버린 나는 그래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두려움에 휩싸이나 보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 이삿짐 정리를 배우고 감정쓰레기통이 되고 싶진 않았던 그 시절 나에게는 분명 도망이 최선이었겠지만 더 이상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불쑥 올라왔다.
조용히 있다고 해서 일을 막 시켜도 되는 사람은 아니에요.
유일하게 나가는 모임이 있다. 거기서 간부를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 역시 책을 연달아 2권 집필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간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폭탄 돌리기 상황이 되었을 때 내 옆에 앉으신 언니가 "네가 해라!" 이러시는 거다.
사실은 그 모임에서 내가 제일 어리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모르는 게 많고 간부로는 무리가 있을 거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본인이 폭탄을 받게 될까 두려웠는지 큰소리로 나에게 폭탄을 던진 거다.
어떤 어르신은 "애들 키우느라 안돼. 힘들어."라며 나 대신 거절의 말을 꺼내주셨는데, 어차피 언젠가 돌아가면서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그냥 내가 해볼까'라는 내적 갈등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 폭탄은 나에게 돌아왔지만, 한 일주일 동안은 머리가 지끈거렸던 것 같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매번 헷갈린다.
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흔쾌히 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고, 부담 안 가지고 하려 했던 일은 부담의 연속이 되었다.
간부가 되었으니 다른 행사가 생기면 빠지기도 뭣하고(물론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다.) 불편한 감정은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맡은 일이니 열심히 하려고 했고, 정작 내 본업은 밤을 새우는 지경까지 갔지만 그렇게 맡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아는 분께서 나에게 아이들 가르치는 봉사를 해줄 수 없냐고 하셨다.
또 한 번의 위기가 이렇게 찾아오나 싶었다.
어부인 남편은 밤에 나가서 오후에 집에 오는데 낮에 조금 자고 이른 오후부터 잠이 들어서 밤에 또 일을 나가기에 싱글맘과 비슷한 생활이라고 구구절절 사정을 말하고, 출판사에서 언제 연락이 올 지 모르니 늘 대기상태여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도 이 무슨 지루한 변명인가 싶어졌다. 사실인데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이런 류의 거절이 어렵구나.
거절을 잘 못하니까 그런 제안은 전부 공격으로 느껴버리는구나.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까.
그분께 전화를 드렸다.
"사실 그때 그 연락을 받고 며칠 째 마음이 무거웠어요. 저는 보통 어떤 제안을 받으면 거절을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욕심도 많고요. 웬만해서는 여력이 되는 이상으로 맡으려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하신 말씀을 듣고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말씀을 빨리 드려야 다른 분을 구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를 드립니다."라고 거절의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급한 게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하시는 거다.
"제가 체력이 그만큼 되면 참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체력이 떨어지면 그 일 들을 다 못 해내고 그러한 이유들로 결국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거든요. 그렇게 봉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다시 말을 전했다.
일단은 잘 알아들었고, 전달은 하겠으나 다른 분이 또 권유할 수는 있을 거다라는 말을 전하셨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감정, 행동 모든 것에서 말이다.
몸을 변화시키려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식단 조절과 수면, 운동 그리고 심리적 안정까지 무수한 노력을 해야 원하는 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거다.
거절 후의 내 마음이 편했냐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거절한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무언가 불편했지만, 나는 그걸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변화시키려면 불편한 걸 감수해야 하듯, 감정의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구구절절 설득해야 하는 내 모습이 구질해 보일 때도 있고,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설명해야 하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있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지켜나가야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원하는 모습을 추구하면서 사는 게 재미가 아닐까?
그렇게 걸어가는 길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돌부리 같은 불편함을 하나씩 걷어나가 보자.
그 불편함을 겪고 나면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