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짐작하지 못했다. 한문 병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 상상력의 부족일 수도 있다. 감이 잡히지 않아 책의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흥미가 생겨 덥석 골랐다. 이슬아 작가는 가족의 모습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친근한 모습을 조금 비틀어 놓았을 뿐인데 생경하기도 하다. 이슬아 작가의 매력이 곳곳에서 뿜어 나온다.
글을 쓰고 출판사를 차리고 부모 아니 모부를 부양할 능력이 되는 딸, 슬아. 가족을 먹이는 데, 손님을 먹이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엄마 복희. 살아내느라 문학청년의 꿈은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에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잘 구현해 내는 아버지 웅이. 세 사람은 그렇게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딸이 집안을 이끌어 가는 가녀장의 시대를 살아간다.
세 사람은 때때로 삐그덕 거리지만 필요할 때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존중한다. 딸은 모부에게 일에 대한 적절한 보수를 지급한다. 어머니 복희는 정규직이고, 아버지 웅이는 비정규직이다. 이유는 복희의 일에 출판사에 절대적으로 중요해서다. 복희는 출판사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부엌일을 하고, 웅이는 청소와 운전을 담당한다.
가부장이든 가모장이든 가녀장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딸이 부모든 모부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는다면 부모로서 아니 모부로서? 그보다 뿌듯한 일이 있을까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낮잠 출판사는 슬아의 필력뿐 아니라 복희의 살림력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슬아는 복희의 된장 연수를 된장 출장으로 명명한 뒤 출장 수당을 지급했다. 수당은 회당 이십만 원씩이고 그것이 바로 된장 보너스다.
95쪽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228쪽
월요일은 또 돌아올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계의 아름다움 역시 달라질 것이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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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녀장의 시대』는 문학동네 독파 앰배서더로 책을 제공받았지만 솔직하게 작성한 독후감과 서평 사이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