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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Jul 08. 2024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

『틱낫한의 사랑법』 틱낫한 지음

『틱낫한의 사랑법』 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나무심는사람 2002


틱낫한 스님은 어떻게 사랑을 주실까?


나는 종교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보내는 '구애'에는 '게을러서, 일요일이라도 늦잠을 자야 해서'라고 에둘러 거절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땐 어떤 신이 나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여전히 종교는 부담스러웠다. 마흔 언저리부터였다. 휴가철이면 가는 산속의 절들이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지친 삶에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을 읽어보았다. 짧은 글이지만 많이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금강경도 읽고 스님의 명상책들도 읽었다. 종교를 뛰어넘어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천주교 예비신자 교육을 받으며 성당에 다니는 지금도 틱낫한 스님의 글은 내 마음을 울린다. 올 상반기 내내 너무 우울한 일들이 많아 내겐 사랑이 참 큰 화두로 다가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틱낫한의 사랑법』이란 책을 만났다. 얼마나 따뜻하게 감싸주는 말들이 많을까 기대하면서 책을 펼쳤다. 


지금껏 읽은 스님의 글처럼 경전과 가르침도 있었지만, 스님의 첫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너무 놀랐다. 충격이었다. 스님도 사람이었다.


스님이 풀어주신 열다섯 가지 이야기에는 반야심경도 금강경도 법화경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스님의 사랑 이야기에서 훨씬 더 많은 감동과 아픔과 존경심을 느꼈다. 사랑을 불법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평생 그분을 사랑하신 것 같다. 


스님은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그분을 만나기까지 오래된 인연이 맺어진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눈앞에 없지만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처음도 끝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서울 게 없다.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다른 형태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 있어도 같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어렵다. 스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편해진 순간, 바로 아주 작은 일로 갈등을 일으키고 감정이 증폭된다. 불경이 무슨 소용이고 스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렇게 잠깐이라도 내 마음을 다독이고 다스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사랑은 변덕쟁이고 내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리지만, 스님의 말씀을 읽고 잠깐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스님이 돌아가셔서 이 좋은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슬퍼했지만, 이렇게 글로 다시 만나서 감사하다. 스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신다. 감사하다.      



-책 속에서

그 사람은 공주처럼 자기 방에 있고, 내 안에 있는 보리심은 경호원이 되어 그 사람을 지켜주었습니다. 만일 그 사람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모든 것-부처님, 자비 실천에 대한 우리의 꿈, 불교를 현실에 살아 있도록 하려는 갈망-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어요. 다르마를 실현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54쪽

우리는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위해 수행할 것을 서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나무를 위해, 짐승들, 바위들, 물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 거예요. 꼴을 갖춘 것들과 꼴을 갖추지 않은 것들, 지각이 있는 것들과 지각이 없는 것들을 위해 수행합니다.
56쪽


우리가 이별하던 순간을 나는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 깊은 좌절감에 젖어 있는 듯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두 팔로 껴안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가슴으로 끌어안더군요. 나도 내 몸을 그 사람 가슴에 그냥 내맡겼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경험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접촉이었지요. 잠시 후 우리는 절을 하고 헤어졌어요. 72쪽


우리 두 사람에겐 힘든 세월이었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 여러 가지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안고 우리는 각자 성숙할 수 있었고 우리의 사랑은 더욱 익어갔어요. 집착의 요소가 줄어들면서 자비와 친절한 사랑이 꽃망울을 터뜨리게 되었던 겁니다. 이별은 우리의 사랑을 파멸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하게 해 주었지요. 79 쪽     


나의 ‘첫’ 사랑은 이미 거기 있었고 늘 거기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시작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훨씬 더 힘이 있는 어떤 존재로 바뀌었어요. 그 깊은 사랑의 씨앗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81쪽  


그냥 지금 있는 곳에 있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깊게 만나고, 마음을 모아 걸으며, 온몸과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하세요. 이것이 수행하지 않는 수행입니다. 129쪽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죽을 필요가 없어요. 사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해요. 무엇이 여러분을 살아 있게 만들어 줍니까? 정념입니다.   158쪽


 궁극적 차원에서 즐거이 걷되
 머리로 걷지 말고
 발로 걸어라.
 머리로 걸으면 길을 잃으리.     
 궁극적 차원에서 다르마를 가르치는
 낙엽들이 허공에 가득하도다.
 길은 달빛으로 덮였고
 다르마는 시방세계에 넘쳐난다.     
 궁극적 차원에서 다르마를 토론하며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미소 짓는다.
 네가 나다. 그게 보이지 않는가?
 말하기와 듣기는 하나다.     
 역사적 차원에서 점심 식사를 즐기며
 나는 모든 세대의 조상들과
 다가올 세대의 후손들을 공양한다.
 함께, 우리는 우리 길을 찾으리.     
 역사적 차원에서 분노하며
 눈을 감고 깊게 들여다본다.
 3백 년 뒤에 우리는 어디 있을까?
 눈을 뜨고 서로를 껴안는다.     
 궁극적 차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설산을 베개 삼고
 아름다운 핑크빛 구름을 이불 삼는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궁극적 차원에서 명상하는 동안
 다보여래의 사자좌에 앉으면,
 모든 순간이 깨달음이요
 모든 열매가 익어서 황홀한 맛이어라.


#틱낫한스님의사랑법 #이현주옮김 #나무심는사람 

#첫사랑 #과거와미래는현재속에 

#마음이모든것을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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