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봄 보러 가지 않을래?
남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꼭 일을 한다. 일요일에도 회사에서 부르면 달려 나간다. 누가 보면 중소기업의 대표인 줄 알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두 아이를 키우고 대학까지 교육시키니 할 말이 없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가끔씩 쉬는 일요일엔 양쪽 부모님 뵈러 가고, 아이들에게 일이 생기면 두 말 없이 달려간다.
나는 전업주부다. 월화수목금금금. 쉬는 날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30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빨리 끝내 놓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지난 연말부터 새롭게 일을 만들어서 정해놓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책을 읽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쓸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아직까지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열심히 한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오붓하게 산책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다. 지난 일요일은 그렇게 쉽지 않은 날 중의 하루였다. 그런 날은 또 시간이 빨리 간다. 어쩌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남편은 나가서 사 먹자 했지만, 난 집에 밥이 있으니 간단하게 우동을 끓여서 나눠 먹자고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뒷산에 가보자고 했다. 요 며칠은 눈도 오지 않고 날도 풀려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리 동네는 작은 언덕 같은 산들이 꽤 많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남편이 장수산 전망대로 낙점했다. 장수산은 야트막해서 부담 없이 산책하기 참 좋다. 나비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원적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 전망대로 가려면 원적산 쪽으로 가야 한다. 지난봄이었던가? 나무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아졌다. 나무 팻말에 구민 참여예산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쓰여있다. 누구 생각인지 탁월하다. 전망대에서 각도만 잘 잡아서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사람들은 어디 수목원에라도 다녀온 줄 안다.
이렇게 가까운데 근사한 전망대가 있는데 사람들은 잘 안 오니 안타깝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차를 타고 멀리는 가도 뒷동산에는 잘 오지 않는다. 그 심리는 무엇인지. 덕택에 붐비지 않아서 여유롭게 찬찬히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바람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산에 오르는 길에 바짝 마른 잎들을 밟으니 바스락 소리가 좋다.
그런데 오늘은 마른 잎과 마른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씩 푸릇푸릇한 잎들이 보인다. 겨울이지만 봄이 머지않았음이 느껴졌다. 오래된 소나무 밑동 근처에 파릇파릇 새 잎이 돋은 걸 봤다. 우리 둘 다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봄을 기다렸나 보다. 갑자기 날짜를 따져본다. 어느새 우수가 지났다. 경칩도 다가온다. 개구리가 깨어난단다. 진짜로 봄봄봄 봄이 온다.
나무 데크 전망대에서 공원 쪽을 바라보니 탁 트여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보니, 그동안 공사를 하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서 시야를 가로막았다. 답답했다. 애써 외면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산의 공기를 바로 느낀다고 좋아하겠지만, 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답답함을 안고 가니 씁쓸하다. 하지만 봄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그 씁쓸함을 달래 본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숲이 우거져 콘크리트 건물을 가려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