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만나러 간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두려움을 만나다

by 발자꾹

설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윤리적이며 합리적으로 장을 보겠다고, 시장과 대형마트, 생협 매장을 고루 다니며 장을 봤다. 기본적인 손질과 준비를 해 놓고 가족들과 잠시 마주 앉았다. 발을 쭈욱 뻗었는데 갑자기 발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왜 이러지?”

아이들도 나처럼 엄지발가락의 발톱을 보더니 갸웃거리다 스마트폰으로 뒤적인다. 흑색종? 색소 침착? 무좀?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카드게임을 하려고 모였다가 나 때문에 서둘러 정리했다.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일부터 설 연휴라 병원은 응급실이 아닌 이상 병원은 문을 열지 않는다. 설을 잘 지내려면 나는 자야 한다.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호흡을 천천히 하고 명상 영상을 틀어 넣고 잠을 청했다. 다행히 피곤했는지 아침에 눈이 떠졌다. 감사했다. 설날은 양쪽 집을 오가느라 바빠서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밤에도 뻗어버렸다.


설날 다음날은 아버님 생신이라 역시 바빴다. 시누이 가족도 함께 하니 시끌벅적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올 겨울에 장만한 어그부츠가 원흉일 거라 했다. 몸에 근육이 없는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거라고 하기에 열심히 걸었을 뿐이다. 진짜로 남편 말대로 운동화 대신 평평한 어그부츠를 심은 게 잘못 이었을까? 걱정이 걱정을 잉태한다. 다행히 잠은 잤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자마자 평소 다니던 피부과에 갔다. 주차장이 비다시피 해서 이상했다. 경비원이 왔다. 오늘까지 병원이 다 휴진이란다. sns의 정보가 잘못된 거란다. 대체 공휴일에 잘못된 희망을 품었나 보다. 집에 가려는데 ‘의지의 한국인’ 남편은 찾고 또 찾았다. 오늘 진료하는 곳이 좀 멀긴 하지만 있단다. 떨리는 맘으로 갔다.


병원에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인천에서 피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모인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다. 덜덜 떨면서 심호흡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젊은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50대 이상의 사람에게 이런 증세는 조직 검사를 하는 게 원칙이란다. 하지만 자신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면 두 달은 기다려 보라고 하겠단다. 발견한 지 얼마 안 됐고 눈으로 보았을 때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 단다. 대신 사진을 찍어 놓으란다. 사람의 눈은 믿을 수 없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남편은 이리저리 내 발톱의 사진을 찍더니 말한다. 아무리 봐도 내가 엄지에 너무 힘을 주고 걸어서 멍이 든 거 같단다. 그래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저녁에 시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내 발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부터 다시 걱정이 되었다. 마음이 요동친다. 다른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밤새 뒤척이며 생각했다. ‘병원에 갈까 말까.’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는 데 정신이 없었다. 고민은 진행 중이었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뒤섞였다. 이대로는 너무 힘들 거 같았다. 평소 다니던 피부과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앞으로 서너 명이 있었다. 가슴이 어찌나 방망이질 치던지 숨쉬기가 힘들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살며시 진료실 문의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 의사 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내 발을 보자마자 말했다.

“암은 아니에요. 하지만 악은 먹어야 합니다.”

신발 때문인지 물었지만, 그것보다는 오래 걸어서란다. 걷지 말란다. 너무 걸어서 색소 침착이 왔단다. 집에서도 자주 발을 받침대에 올려놓고 있으라 했다. 골다공증 때문에 걸으라는 진단을 받았다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란다. 큰 병은 아니라는 말에 그냥 기뻐서 왜 항생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묻지 못했다. 그냥 너무 좋아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와서 약국에서 약을 타서 버스를 타고 왔다.


나는 내가 많이 변한 줄 알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병인 건강 염려증이 줄어든 줄 알았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 나를 많이 긍정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별로 변한 게 없다. 병원에 가면 심장이 벌렁벌렁 혈압이 널뛰기를 한다. 어딘가 조금 이상 증세를 느끼면 가장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한다. 아픈 것보다 공포와 두려움이 나를 덮치는 게 더 무섭다. 나는 내 안의 공포와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파오는데 그럴 때마다 펄럭대는 내 몸을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그렇지만 한 가지 변한 건 있다. 그런 나도 나이므로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한 거다. 이번에도 며칠간 엄청 고생한 나를 다독여 줘야겠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야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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