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걱정쟁이 엄마가 된 사연

by 발자꾹


처음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했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컸나 보군!’ 딱 그 정도였습니다. 신체검사에서 현역 2급을 받았을 때도 놀랐습니다. ‘신체 건강한 울 아들이 어쩌다?’ 안타깝기도 아쉽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너무 말라서였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친구 중에는 몸무게 때문에 ‘공익’(사회복무요원이라던가요?)으로 가는 친구들도 몇 명 있더군요.


신체검사를 받고 각종 위로 파티를 즐기고(?)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밀고, 4월 1일에 입소했습니다. 전국의 아들들이 모인 가운데 사열식을 하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훈련소에 있는 절에 건강 안녕 기원 초를 올리고 왔습니다. 그때는 종교가 없던 시절이라 그냥 이곳저곳 종교시설마다 기웃거렸죠.

그리고 집에 와서 아들의 안녕을 기원했죠. 주말이 되니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데!


이틀 후,

친정아버지 제사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반갑지만 반갑지 않았습니다. 너무 놀라 프라이팬에서 지지던 전들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아들 말로는 훈련소에서 한 검사에 불합격했다고 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지요.


하지만 엄마는 그저 반가운 척만 했습니다. 속으로 아들이 불치병에라도 걸렸을까 봐 얼마나 맘을 졸였는데 말이지요.


바로 다음 날 아들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딸도 집에 있어서 함께 가주었습니다. 접수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발이 벌벌 떨려서 의자에 간신히 기대앉아 있었습니다. 차례가 되어 아들 이름이 부르길래 같이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간략하게 설명하고 의사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엄마가 폭풍처럼 질문을 퍼부어댔습니다.


의사는 동그래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우선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사실에서 소변 검사와 피검사를 하고 기다리는데, 왜 그리 하세월인지. 의사는 다시 CT를 찍어봐야 정확히 알겠다고 했습니다. 떨리는 맘으로 진료실을 나와서 간호사와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CT를 찍으러 병원에 가고 또 결과를 보러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그 며칠 새, 마치 지옥에 가는 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런 때는 좋은 상상은 할 수 없고 가장 나쁜 상상만 떠올라 속을 후벼파는 걸까요?


일주일 만에 시부모님과 통화를 하던 남편이 손자 안부를 묻는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어머니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걱정이 한가득 담겼습니다.


CT를 판독해 준 의사는 생각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별다른 약이나 처치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도 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있지만 처방이 없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큰 병이 아니라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들은 한 달 후에 다시 병무청에 갔습니다. 신체검사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의사의 소견서를 전하니, 다시 한 달 뒤에 재 입대하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맘이 놓이지 않아 가능한 자연식을 먹이고, 10시만 되면 어서 자라고, 운동도 쪼금만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아들이 다시 입영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6월 10일 아침. 처음 논산에 갈 때(4월 1일)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는데, 다시 가니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은 척 아들에게 잘 지내라고 했습니다. 아들도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 보내놓고 일주일 내내 조마조마 애를 태우며, 하루도 제대로 잔 날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괜찮으려나? 다시 오면 어떡하지? 더 큰 병원에 가봐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다시 훈련소에 잘 적응하고 있고, 몸도 괜찮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더 캠프’라는 훈련소 전용 소통 창구를 통해 인터넷으로 날마다 위문편지를 보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공중전화는 어쩌다 한 번씩만 할 수 있었기에 몹시 답답했습니다. 아들도 말은 많이 안 했지만 힘들고 답답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훈련소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있던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편지지에 최대한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게 표현했습니다. 남편이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군대 간 아들에게 이렇게 열렬히 ‘러브레터’를 보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때 보냈던 편지를 모아 더 캠프에서 작은 책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아들이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엄마의 편지를 여러분께도 공개합니다.




힘들고 지친 분들, 사랑이 고픈 분들

이 또한 지나갑니다.

날마다(월 화 목 금 토 일) 어떤 편지가 올지 기다려주세요~~


*덧붙이는 말: 편지가 연재되는 한 달 동안, 책과 그림책 관련 ‘매거진’은 쉬어갑니다.

수요일 연재(순간이 모여 삶이 된다)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