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존스 Jun 29. 2021

나는 엄마가 불쌍하고 불편하다.

k-daughter 컴플렉스

  언니와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생일이 빨랐던 언니와 나는 7살, 9살이었다. 너무 어릴 때라 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늘 잠이 들어 있었고, 언니와 나는 대충 옷을 차려 입고 대충 가방을 메고 그렇게 이삼십 분을 둘이서 걸어갔다.

  어느 날, 언니랑 학교에 가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조그만 1학년 아이부터, 덩치가 큰 6학년 언니, 오빠들도 모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만 뺀 모든 아이들이 체육복이었다. 둘이 맞잡은 손에서 땀이 났다. 언니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우리가 무언가 잘못했나 봐'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1년에 한 번 있는 운동회날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엄마들도 간만에 예쁘게 차려입고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 학교에 오는 그 운동회날 말이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10원인지, 20원인지를 주면서 지하 1층에 있는 공중전화에 가서 집에 전화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딱히 야단을 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무서워서, 혼자 일상복을 입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신발을 잃어버렸던 날도 생각난다.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보니 신발이 한 짝 밖에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신발을 잃어버려서 엄마에게 혼나면 어쩌나. 집은 너무 먼데 집까지는 어떻게 가지?' 나는 울면서 신발 한 짝을 들고 언니네 교실을 찾아갔다. 언니는 고학년이라 나보다 수업이 한 시간 늦게 끝났다. 창밖에서 눈으로 슬쩍슬쩍 언니를 찾아보다가, 무서운 언니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복도에 신발장과 신발장 사이 틈에 숨기도 했다.


  나는 너무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복도에서 한참을 어정대던 나는 결국 언니의 담임 선생님께 들켰고, 선생님은 언니를 불러주셨다. 언니가 나를 안아주며, "신발이 없으면 실내화를 신고 가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그날은 오래간만에 언니와 같이 집으로 갔다. 언니와의 기억이 너무 커서, 신발을 잃어버린 걸로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학년이 되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다. 언니와 나의 도시락 반찬은 늘 시원찮았는데, 어떤 날은 김치 한 가지뿐인 날도 있었다. 동그란 스텐 반찬통을 열면 시큼한 냄새가 나는 빨간 김치만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한 애들끼리 셋넷 모여 서로의 반찬을 나눠 먹는 풍경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기엔, 내 도시락이 너무 부끄러웠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누가 볼세라, 반찬통 뚜껑을 덮어 놓고 젓가락이 들락날락할 때만 살짝 뚜껑을 열였다. 우습게도, 남동생이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반찬통에도 계란이, 햄이, 고기가 들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만 두고 종종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우리는 집 청소를 했다. 엄마가 집에 왔는데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그날은 욕을 바가지로 먹는 날이다. 그날도 엄마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나는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런데, 언니가 참외를 깎아 먹고 참외 껍질을 싱크대 안에 그대로 버려두었다. 여행 가서 아빠랑 싸웠는지, 아님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그 참외 껍질을 치우지 않았다고 나를 때리고 욕했다. 내가 먹은 참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춘기가 되어서는 엄마를 죽도록 미워했다. 엄마가 없어지기를 바랐다. 이런 감정들도 분명 그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땐 그걸 몰랐다. 어린 마음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를 미워하는 내가 이상하고 나쁜 아이 같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난, 엄마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엄마를 대신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노라고 자꾸만 변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자기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아이들에게 그 감정을 쏟아 냈고, 화가 나면 인정사정없이 우리를 때렸다. 그리고 정말 슬픈 것은, 나는 거칠고 억센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너무 순해서 없으면 없는 데로, 주어지면 주어지는 데로, 한 번도 억지라고는 부려 본 적이 없는 그런 아이였다. 내가 별로 잘 못 한 게 없는데, 벼락이 떨어진 듯 화를 내는 엄마. 내 속에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과 함께 엄마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늘 교차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해서 쓰는데, 어린 시절 엄마에게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이,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분명 나의 잘못은 아닌데, 나는 또 죄책감을 느낀다.



   얼마 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읽는데 딱,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나왔다. 그 책에서는 엄마 같은 사람을 에너지 도둑이라고 칭했다. 부정적 에너지를 뿜으면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과거의 일을 자꾸만 꺼내어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한다. 언제나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두려워하며, 늘 방어적인 태도로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 주기만을 바란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욕하고 질투하는 우리 엄마. 나쁜 에너지로 가득한 이야기에 공감해 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맞장구를 쳐주면 그제야 만족하는 사람.


  엄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막상 엄마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엄마가 나의 에너지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부정적이라는 성격의 특성은 한 개인의 일부일 뿐이며,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당신의 에너지 도둑이자 친구인 그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갇혀 인생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가끔은 그가 기분 전환을 하고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엄마는 우리에게 자기는 못 배우고 무식해서 애들을 그렇게 밖에 키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엄마에게서 직접적인 사과의 말은 듣지 못했지만, 엄마의 이 고백 속에는 우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녹아 있다. 우리가 모두 결혼을 하고, 손자들이 태어나고, 조금씩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엄마는 본인의 과거의 삶 뒤돌아 보고 있다. 지금의 엄마는 우리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마음의 빚을 조금씩 갚고 계신 듯하다.

  말 한마디에도 쉽게 마음이 상하는 우리 엄마. 그 생각을 헤어릴 수가 없고, 그 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늘 어려운 사람. 가슴속에 화가 가득하지만 풀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 그런 엄마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지금의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딸을 바라는 진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