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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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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의 삶

  한국에는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있습니다. 결혼 이주 여성 하면, 우린 보통 시골 노총각에게 시집 온 동남아시아의 어린 신부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전체 이주 여상의 36%가 중국인(한국계 중국인 포함)으로, 전체 결혼이주여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결혼 이주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제 남동생의 아내이자, 저희 어머니의 며느리이며 저의 올케인 왕잉씨입니다.


 오늘은 그녀와 함께 따뜻한 모닝커피를 마시며, 평상시보다 조금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 한국인인 남편을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처음에 남편을 만났을 때가 2007년, 그러니까 제가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어요. 남편은 중국에 있는 작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저는 그 회사의 사무실 직원이었어요. 작은아버지 공장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같은 공간에서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모여서 일하다 보니 연애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도 참 많았죠. 저는 사무실 근무를 했던지라 사무실에서 한국 직원인 남편을 자주 마주쳤어요. 그러다보니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어릴 때라 좋아하는 마음만 있었지 결혼까지 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2011년, 남편과 결혼을 한 뒤에는 ‘한국 남자랑 결혼했으니까 언젠가 한국에 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한국에 오게 될지는 몰랐어요. 첫 아이인 현수가 2013년 3월에 태어났거든요.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남편은 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 사촌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거든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중국에 있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요. 하지만 남편이 워낙 고집이 세고,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이라 2014년 6월, 결혼 3년 만에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둘째 임신 6개월 때였죠. 한국에서 벌써 7년을 넘게 살았네요.


-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임신 중이었던 데다가, 시부모님이랑 한집에서 살아야 했고, 한국말도 서툴렀으니까 한국에 온 첫해가 가장 힘들었어요. 아마 어머님도 여러가지로 힘드셨을 거에요. 갑자기 식구가 넷이나 늘었으니까요.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면서 제가 제일 불편했던 건, 시어머니랑 시아버지가 아침마다 싸우시는 거였어요. 밖에서 시부모님이 싸우시니 방안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아침 시부모님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힘들었을 때마다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엄마가 가장 보고 싶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아.. 애기 낳고 나서.. 그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플 때도요. 부모님을 한국에 초대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부모님이 오시지 못 했어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도 비자 문제로 오시지 못했거든요. 저도 중국에 가지 못한지, 2년이 되었네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네요.

 저희 엄마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잘 하지 않으시거든요. 얼마 전에 아버지가 매우 아프셨는데, 제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오지도 못하는데 괜히 신경만 쓸 것 같아서 말을 안 하셨데요. 나중에 아버지 다 낫고 나서야 그걸 알게 되었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 한국에 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안 좋은 일이 몇 번 있었던 거로 알아요.


 맞아요.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6년 전엔 삼촌이, 얼마 전엔 이모가 돌아가셨죠. 할아버지들께서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돌아가셨을 때 슬픔도 참을 만했어요. 하지만 삼촌과 이모는 젊기도 했고..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한참 살아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지듯 아팠어요.. 많이 울었어요. 가족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무척 힘들 것 같아요. 외국 사람과 결혼한 것이 후회되진 않나요?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을 아예 안 한 거나.. 결혼하게 된다면.. 음.. 힘들어도 외국 사람이랑 하고 싶어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사람이랑 결혼해서 사는 것보다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한 번뿐인 삶인데 조금은 힘들어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한국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제2외국어도 배웠고,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볼 수 있었죠.

 그리고 제 생각에 ‘중국 남자는 어떻고, 한국 남자는 어떻다’ 이런 말들, 다 틀린 것 같아요. ‘중국 남자’, ‘한국 남자’, 즉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중국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고 자상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한국 남자가 모두 그렇지 않듯이 말이에요.


- 우리 엄마지만 시어머니가 성격이 보통이 아니잖아요, 남편 성격도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지 그 노하우가 궁금해요.


 어머니는 아무래도... 언니는 딸이고 저는 며느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화나고 서운할 만큼 저한테 하시진 않았어요. 언니는 딸이고 편하니까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는 거겠죠.

 그리고 남편은.. 제가 눈치가 좀 빠른 편이거든요. 말을 꺼낼 때와 참을 때를 잘 아는 편이에요.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 싶을 때까지 일단 참는 거죠. 그리고 화가 좀 풀어졌다 싶을 때 이야기를 꺼내요. 그리고 남편 성격을 아니까..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안 바꾸거든요. 스스로 경험해보고 느낄 때까지 기다려 줘요.

 중국에서 살 때는 한 번도 본래 성질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몰랐다니까요. 저렇게 성격이 있는 걸 한국에 와서 알았어요.


-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한국과 중국의 아이를 키우는데 차이점이 있을까요?


 일단 중국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요. 보통 3~4시쯤 하교를 하고, 방과 후 돌봄도 잘 되어 있는 편이죠. 옛날부터 중국은 일하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한국도 많이 바뀌긴 했는데, 아직도 한국 엄마들의 육아 부담이 중국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놀랐던 게,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시어머니(9남매의 맏며느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중국에서도 명절에 음식을 준비하거나 제사를 지내기는 하지만 시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도 저에게 제사를 물러주실 생각이 없으시기도 하지만, 저도 어머니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못 가르쳐 준 것이 후회되고 미안해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중국말을 계속 썼어야 했는데, 시어머니랑 같이 한집에 살다 보니 중국말보다 한국말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어요. 코로나가 끝나면 방학 때마다 중국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아이들 중국말도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제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씩씩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사회성이 좋은 아이가 되어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 그럼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지금 남편이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 하고 있어요(관광가이드). 저도 힘들지만, 본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요즘 자전거 타는 취미에 빠져,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남편은 뭐든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하는 사람이거든요. 뭐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는다면, 그것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절대 우리 식구를 굶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믿으니까 기다리는 거죠.


- 남편이 행복한 사람이네요. 본인을 믿고 기다려 주는 아내를 만났잖아요? 남편은 취미도 있고, 자기 좋아하는 것도 찾으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 본인이 원하는 것은 뭐예요? 본인을 위해선 뭘 하고 싶나요?


 저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요. 자전거 타는 거, 등산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남편처럼 뭐 하나에 푹 빠지고 그런 것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죠.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아이들이 연년생(8살, 9살)이라 손이 많이 가고 시간 내기가 힘드네요.


-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크잖아요. 3, 4년 후에 누군가 돈 백만 원을 손에 딱 쥐여 주면서 ‘너 배우고 싶은 거 한번 배워 봐’ 그랬다고 쳐요. 그럼 본인을 위해 뭘 하고 싶나요?


 음.. 그렇다면 일단 첫 번째로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운전도 배우고 싶어요.

 사실 제 어렸을 때 꿈은 디자이너였어요. 지금도 옷을 좋아하거든요. 중국에서 살 때는 옷 장사도 했었고.. 아이들이 크면 작은 옷 가게를 하나 꾸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은 생각뿐이지만요~


- 좀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코로나 이후로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아요. 그럴 땐 무슨 생각이 드나요?


 다행히도, 제 앞에서 대 놓고 중국을 욕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어요. 나도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로 좀 신경 쓰이긴 하죠. 한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 욕하는 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중국 사람들도 코로나로 인한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코로나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이러스라면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이 나쁜 거죠.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누이들이 셋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들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시누가 셋이라 힘든 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거든요. 한국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어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에 살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국에 사는 중국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중국에서 사느냐 한국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마음가짐에 따라서 자기 삶이 달라지는 거죠.

 쉽지 않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세 명이나 있고, 코로나 때문에 남편이 일을 못 한지 2년째에 아이들은 연년생, 게다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요. 누가 봐도 지금 저는 힘든 상황이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까지 ‘힘들다’,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거든요. 주어진 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거죠. 작고 소소한 것에서 만족하는 삶, 멀리 있는 미래에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한국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한국에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조금은 특별한 선택을 함으로써, 가족 그리워 하며 살아가고 있는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있습니다.  사랑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자기의 선택에 끝까지 책임을 지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그녀들.

 오늘 제가 만난 왕잉씨도 수 많은 '그녀' 중에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이 자리를 빌어 바보 온달 같은 저의 남동생을 믿고 결혼해 준 평강공주 같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바보 온달이, 멋지고 든든한 온달 장군이 되어 그녀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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