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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Nov 09. 2021

적당한 거리

나와 타자간의 적당한 거리


  「적당한 거리(전소영)」라는 그림책이 있다. "네 화분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라는 친구의 물음에 저자는 식물을 잘 키우려면, 그 식물의 특성에 맞는 적당한 물,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그리고 정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마치 우리네 사이처럼 말이다.



  나 또한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잘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년 전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난 MJ 언니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자전거 타는 스타일도 비슷했고, 성격 또한 잘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 같이 라이딩을 즐겼고, 수시로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남들에게 말 못한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다. 1년 전, 그 언니가 갑자기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친했던 나에게조차 아무런 언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MJ 언니는 동호회에서 자기 흔적을 지웠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동호회의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언니를 무척 좋아했기에, 마치 사랑했던 연인에게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마음이 아프고 허전했다. 늘 곁에 있던 사람이 그렇게 떠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은 자책이었다.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이 있었나?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과거의 내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보며,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 잘못들을 애써 찾아내려는 시간은 괴롭기만 했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지워버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문득, 신문 기사에서 보았던 리츄얼 플랫폼 [Meet Me]가 떠올랐다. 여러 가지 리츄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나를 껴안는 글쓰기」라는 리츄얼이 눈에 확 들어왔다. 평소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도 했지만, 「나를 껴안는 글쓰기」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를 껴안는 글쓰기」는 그 이름처럼, 매일 매일 리츄얼 메이커가 던져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일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즐거웠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 또한 재미있었다. 처음엔 뜬구름 같기만 했던 내 생각들이, 글을 쓰는 동안 차곡차곡 정리되어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함께 리츄얼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무엇이든 1등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왔으나,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의 삶을 갉아 먹는 부모와의 인연을 과감히 끊기로 한 사람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찾아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 데이트 폭력의 기억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사람, 사랑하는 엄마를 암으로 보내고 찾아온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하루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기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냈고,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남기며 용기와 위로를 주고받았다.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떠나버린 인연으로 인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던 내 마음도, 어느새 ‘느슨한 연대’로 맺어진 글 벗들에게 받은 온기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었다.



  ‘나’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함께 리추얼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딸,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랑하는 연인, 형제와 자매, 친한 친구.... 상대방의 부정적 에너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우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 그 관계를 끊어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용기를 내어 관계를 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는 한마음으로 응원의 말을 전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글 벗들과 함께 글을 나누었던 시간은, 나에게 ‘버릴 수 없는 인간관계는 없다’라는 것을 깨달게 했다. 피를 나눈 가족이든,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든 상관없다. 그 관계로 인해 내가 상처받는다면 과감히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동호회를 떠난 MJ 언니도 그랬을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떠나는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이제 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위해, 적당한 거리는 언제나 옳다.







“샐리님의 글들을 다른 듯하면서도 모두 사랑을 말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나의 인생에 대한, 남편과 자녀와 같은 관에 대한, 그리고 어리고 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요. 사랑이 참 많으신 분이구나 싶었어요..“



“어린 시절, 특히 학교에 다닐 때는 인사이더가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점점 나를 이해해주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느껴요. 이걸 깨닫는 순간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고 저에게 더 집중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남에게 맞추는 대신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실 샐리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과거를 되짚어보고, 그게 설렁 힘든 기억일지언정 다시 한번 글로 적어 내려가는 과정이 결국엔 저에게도 묘한 힘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이번 주 리츄얼에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주신 그 과정이 샐리님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넨다는 것도 아주 큰 용기셨을 텐데 샐리님은 정말 용기 있고 단단한 분이신 것 같아요. 저는 자주 숨고 용기가 없는 편이라 저와 다른 면을 가진 샐리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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