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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Jan 20. 2022

편리함이 나에게 남긴 것

로켓 와우 멤버쉽과 밀키트, 그리고 과체중

  2년 전 코로나가 심각해지고 애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나에게는 커다란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로 ‘무엇을 해서 먹어야 하나?’였다. 요리를 싫어하는 나에겐, 갑자기 들이닥친 ‘급식 없는 삶’이 너무 버거웠다. 다양한 음식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장보기의 고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나는 쿠팡의 로켓 와우 멤버쉽 회원이 되었다.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배송.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주문해도 새벽 6시 전에 배송되는 로켓과 같이 빠른 쿠팡의 배송 서비스는 소비자 입장에선 혁신에 가까웠다. 게다가 물건의 종류도 다양해 굳이 외국계 창고형 할인매장에 가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또한 제품 사진 옆에는 100g당 단가와 할인율이 보기 좋게 표시되어 있어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수고로움 없이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요알못’인 나에게 꼭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밀키트와 간편 식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먹고 싶은 요리의 이름만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다음날 손쉽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냉장고 속 채소뿐만 아니라 각종 조미료와 양념들까지도 유통기한을 넘겨 썩어가기 일쑤였다. 갖가지 조미료를 구색에 맞추어 사들일 필요도 없고, 손질된 정량의 음식 재료만 들어 있기에 음식 쓰레기조차 생기지 않는 밀키트가 나는 너무나 좋았다.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나의 쿠팡 사랑은 코로나와 함께 커져만 갔고, 쿠팡에서 장을 보는 횟수와 금액도 점점 늘어갔다. 어느새 나는 ‘쿠팡’이라는 거대 유통기업의 충성스러운 고객이 되어 편리한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누리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쿠팡의 달고 짠 밀키트 덕분인지, 간편하게 너무 많은 음식을 섭취한 덕분인지 아이들과 나의 체중은 서서히 계속 늘어갔다. 키 157에 몸무게 60 킬로그램. 도저히 불어난 체중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2022년 1월. 새해 다짐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먹는 양을 줄이고 매일매일 ‘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어느 날 하루 만보를 채우기 위해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골목 시장에 가게 되었다. 집 근처에 공원도 있고, 산도 있지만 혼자 재미나게 걷기에는 시장만 한 곳이 없었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유모차를 끌고 엄마와 함께 매일 다녔던 시장 길은 과거의 활기를 잃고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썰렁한 거리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시장 안의 슈퍼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슈퍼 안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세일하는 당면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잡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을 사고 피망을 샀다. 버섯도 한 팩 집어 들었다. 잡채용 돼지고기도 3천 원 어치를 주문했다. 밀키트를 하도 먹어서 그런가? 내 머릿속에는 레시피 카드가 저절로 소환되어 마치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잡채 그까짓 거 별거 아니지! 야채를 써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지 잡채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어!'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고구마 더미를 뒤져 취향 것 둥글고 매끈한 고구마도 서너 개 담았다. 고구마는 보관이 어려워 박스로 구매하면 빨리 소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이렇게 한 번 먹을 만큼만 사고 다음에 또 사러 와야지 싶었다. 작은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도 한 팩 담았다. 때글때글한 딸기가 쿠팡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고 신선했다. 쿠팡에서는 몇 가지만 담아도 5만 원을 훌쩍 넘겼는데, 시장에서는 이것저것 담아도 최소 배달 금액인 3만 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밀키트가 참 비싼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예전에 나는 시장 구경을 참 좋아했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시장이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데는 인터넷 쇼핑에 중독된 내 탓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배달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슈퍼 한구석에 있는 스티커 모음 판을 장바구니 속에 슬그머니 챙겨 넣었다. ‘올해는 시장에 가서 장도 직접 보고, 밀키트가 아닌 나의 수고가 조금은 더 많이 들어간 요리도 조씩 시도해 봐야지!’라는 작은 다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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