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나의 슬픔은 언제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 애를 써도 나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나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어린 시절엔 공원에서 놓쳐버린 헬륨 풍선이 하늘 높이 둥실 날아가는 것을 보며 슬퍼했고, 긴 연휴가 끝나고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사촌 동생들의 축 쳐진 등을 바라보면도 나는 슬펐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잘하게 슬픈 일들은 줄어들었으나(이 또한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느끼는 슬픔은 더 깊고 날카로웠다. 의료 사고로 온 몸의 피를 다 쏟아내고 요절한 작은 엄마를 보냈을 때, 작은 엄마가 남기고 간 선호가 계모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을 떠나가던 날, 오토바이에 치어 죽어버린 얄리를 품에 안고 내 손에 퍼지던 따뜻한 체온을 느꼈을 때. 사랑했으나 더 이상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그들 때문에 나는 울었다.
나는 슬픔의 기억과 상실의 경험이 많은 사람을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떠나버린 것들로 인한 슬픔의 시간은 곧 지나가지만, 그들이 선물한 기쁨의 시간은 오래오래 우리 곁에 함께하므로.
나에게 소중한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많은 슬픔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슬픔의 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삶이 길어질수록 슬픔에 무뎌지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닥친 슬픔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그들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슬퍼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입 맞추고 포옹하고 사랑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생의 사소한 것들까지도.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