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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Feb 23. 2022

바구니 자전거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시작과 끝

   5년 전, 근처에 지하철 역도 없고,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고,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요가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마침 나에게는 이런저런 이유로 장만한 7만 원짜리 미니벨로 자전거가 있었고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편도 15분 거리 요가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너무 저렴한 물건이었던 탓이었을까? 7만 원짜리 자전거는 몇 달 만에 어이없이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한 나는, 거금 27만 원을 들여 브랜드(삼천리)에서 24인치 바구니 자전거를 구입했다. 라탄 스타일 바구니와 인조 가죽으로 만든 핸들과 안장이 멋스러운 청록색 바구니 자전거는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사이클」이라는 고급 스포츠에 빠져 몇 백만 원짜리 로드 사이클과 접이식 미니벨로의 명품이라는 브롬톤을 가지게 된 지금까지도, 바구니 자전거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소울’과 같은 자전거이다.


  바구니 자전거는 일주일에 한 번 잠실철교를 건널 때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을 나에게 선물하였고, 돌봄에서 만나는 어린 친구들을 짐받이 안장에 태우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였다. 로드 싸이클로만 오를 수 있다고 믿었던 미음나루 고개와 아이유 고개를 넘어 팔당대교까지 나를 데려다 주기도 하였으며, 한강과 왕숙천, 중랑천을 아우르는 중장거리(60km) 반장화 코스도 거뜬히 달려 주었다.


   어떤 날은 한강에서 MTB를 탄 아저씨가 나를 쫓아와 ‘그 바구니 자전거는 어디에서 만든 거 길래 그렇게 잘 나가냐’라며 감탄을 늘어놓기도 하였고, 높은 고바우를 가볍게 넘을라치면 한 무리의 아저씨들에게 ‘저 바구니 탄 아줌마에게 업힐은 어떻게 타는 거냐고 좀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랬다. 바구니 자전거는 내 엔진의 튼실함을 증명해 주는 내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얼마 전, 나는 바구니 자전거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배달의 민족’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바구니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너무 빠른 속도 탓에 배달의 민족 AI 시스템은 ‘안전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며 나를 걱정해주기도 하였고, 혹시 ‘전기 자전거’를 타면서 ‘일반 자전거’로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증명을 하라며 자전거의 사진을 찍어 전송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하체 힘을 과시하며 나도 모르게 나의 자전거를 혹사시키고 있었나 보다.


   나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이었을까? 배달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자전거는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틈틈이 관리를 해왔음에도 너무 많은 시간을 달려온 자전거는 자기 수명을 다 했다는 듯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왔다. 며칠 전에는 배달 중에 체인이 뒤엉켜 버리는 바람에 나를 식은땀 흘리게 했고, 안전과 직결된 브레이크 작동 상태도 불안해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마다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아... 이제는 너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이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꼬. 모르는 사람이야 버리고 새로 사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이 마음을 알 것이다. 마치 다리 한 짝을 떼어버리는 것 같은 이 서글픈 마음을 말이다. 나와 함께 국토종주를 했던 작은 아들은 자기도 울컥한다며 버리지는 말고 배달해서 번 돈으로 한 번만 더 고쳐서 타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하고, 바구니를 여러 번 손봐준 남동생은 카우보이도 말 다리가 부러지면 총으로 쏴 죽여서 고통을 덜어준다며 보내줘야 할 때 보내주어야 하는 거라고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꽃이 된 로봇(김종혁)」이라는 그림책에서 할머니는 로봇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친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할머니는 오랜 여행 끝에 진정한 친구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여행을 다니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첫눈을 함께 본 로봇’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아니기에 사랑이 뭔지, 사람의 마음이 뭔지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로봇은 할머니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할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꽃이 되고자 한다.


  나에게도 바구니 자전거는 그런 존재이다.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나와 함께 비를 맞고 눈을 맞았으며,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달려 주었던 내 자전거. 그 행복한 시간들을 함께 해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나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바구니 자전거와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나중에 이 이별을 아름답게 기억 할 수 있도록  나의 낡은 자전거가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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