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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Sep 10. 2021

'달'을 꿈꾸는 행복한 시간

   3년 전,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 나는 늘 자전거 여행을 꿈꿔왔다. 복잡한 한강 자도를 벗어나 아름다운 우리 국토의 구석구석을 내 사랑하는 자전거와 함께 달리는 상상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 동해안 해파랑길, 그리고 서해에서 부산까지 633km에 이르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까지...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도로만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가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꿈 같은 일이었다. 주말 하루 자전거 모임에 나가는 것도 신랑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나가는데,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두고 몇 박 며칠 일정의 자전거 여행을 갈 수는 없었다.




  작년 가을, 날씨마저 환상적이었던 날. 동호회 아저씨 둘이 국토 종주를 떠났다. 아쉽고 부러운 마음에 지인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 있는 후미개고개까지 배웅을 나갔다.

 '내가 남자였다면 저 둘을 따라갔을 텐데... 나도 국토 종주 하고 싶다고....'

  여자라서 못 가고, 엄마라서 못 가는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며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나도 국토종주를 꼭 떠나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거의 못 하고 남동생과 9살 조카 현수, 11살 작은 아들 희찬이랑 자전거를 탔다. 로드싸이클로 쌩쌩 달리다가 아이들 속도에 맞춰 천천히 자전거를 타려니 몸도 힘들고 재미도 없었다. 열심히 연습한 만큼 아이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도전과 성취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도 점차 변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이클을 못 타서 아쉬운 마음보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더 컸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방학 동안 열심히 연습했으 춘천라이딩(북한강자전거길)에 도전해 보자며 아이들에게 국토 종주 수첩을 선물하였다. 아이들은 인증센터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도장을 찍었고, 75Km를 달려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그때 부터 내 마음 속에 어떤 희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국토 종주를 꼭 싸이클로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천천히 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아이들이 하루에 100km씩만 탈 수 있다면 국토 종주에 도전할 수 있을 텐데...'


  그날 이후, '국토 종주'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설렜다. 어느 날 무심코 달력을 봤는데 다가오는 추석 연휴가 5일이나 되었다. 5일이면 도전해 볼 만 했다. 몇 년 후에나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꿈이 지금 당장 이루어질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 지르자. 일단 지르고 보는 거야!'

  이미 내 마음은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고, 내 머릿 속은 온통 국토 종주 생각 뿐이었다. 그 동안 열심히 해왔던 글쓰기도, 온라인 강의도, 책 모임도 모두 뒷전이였다. 국토 종주 코스를 짜고, 숙소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 자전거 연습부터 시작해, 준비해야 할  산더미였다.



 

  드디어, D-day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2021년 9월 18일.

  나는 11살 된 아들과 9살 된 조카, 남동생과 함께 국토 종주를 떠난다. 틈틈히 정서진에서 충주탄금대까지 구간을 완료하여, 우리에게 남은 구간은 충주탄금대부터 낙동강 하굿둑까지 401.6Km, 그리고 안동댐까지 80.8Km를 더해 총 482.4Km이다. 하루 평균 80Km씩 잡아도 총 6일간에 이르는 길고 도 긴 여정이다.


  우리는 충주탄금대를 출발하자마자 나오는 이화령(5km)과 소조령(2km)을 넘어야 하고, 비포장 급경사로 유명한 다람재와 무심사, 박진고개도 넘어야 한다. 낙동강 하류 자전거길을 달릴 때는 슈퍼마켓 하나, 가로등 하나 없다고 하니 쓸쓸하고 고된 여정이 될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장대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야 할 수도 있다. 사소한 변속 트러블 부터 시작해, 펑크가 날 수도 있고 타이어가 찢어질 수도 있다. 긴 여정에 누군가는 몸이 아플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넘어져서 다치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경우의 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걱정보다는 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국토 종주를 준비한다. 걱정과 고민 따위는 나의 폴딩 바이크(브롬톤)를 접듯이 차곡차곡 작게 접어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두려고 한다. 우리가 중도에 포기하고 도전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아이들과 우리 남매의 도전은 그 자체로도 가치있다.


  우리가 막상 '달'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생각보다 달의 모습이 시시해서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달을 바라보며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전거길을 힘차게 달리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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