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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Sep 07. 2021

누구에게나 있는, 딱 그만큼의 인내심

"엄마, 엄마는 참 인내심이 강한 것 같아. 자전거 탈 때 보면 힘든 걸 정말 잘 참는 것 같아.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


   자전거를 탈 때, 나의 인내심은 참 대단하다. 오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절대 발을 내리지 않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인내심'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을 뜻한다. 내가 좋아서 참고 견디는 것인데, 그것을 '인내'의 범주에 넣어 "나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부끄럽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만성적인 피부병을 앓았다. 자극을 주면 줄수록 주변으로 넓게 퍼지고 심해지기 때문에 절대로 긁으면 안 된다. 수 십 년 동안 나를 어지간히 고생시켰던 이 피부병은 내 성격을 예민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간지러움을 잘 참는 능력」이 좋은 쪽으로 승화되어 「고통을 잘 참는 능력」으로 발전하였다. 지겹도록 나를 괴롭혀 왔던 피부병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잘 참는' 사람으로 나를 만든 것이다.


   남들이 아파서 죽을 뻔했다는 레이저 제모나 아이라인 문신을 할 때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고, 삼십 대 중반에 치아교정을 했을 때도 ‘치근이 짧은 치아가 잘못되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었지 이가 아파서 밥 못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워낙 아픈 걸 잘 참다 보니, 몸이 안 좋아도 아픈 줄 모르고 어영부영 지나가는 날이 많다. 이제는 내가 통증을 잘 참는 사람인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 건지 헛갈리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간지러움을 너무 힘들게 참다 보니, '통증을 느끼는 피부 감각이 퇴화하여 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간지러움을 참는 능력에서부터 비롯된 나의 '참기 내공'은, 나이 마흔이 되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한 차원 더 위의 능력으로 승화되었다. 육체의 고통(통증)을 넘어, 정신적 고통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여러 번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드 사이클을 타고 주말에 라이딩을 하러 가면 하루에 보통 100km가 넘는 장거리를 타게 된다. 허리를 굽히고 있는 자세로 핸들 바를 잡고, 좁고 단단한 안장 위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엉덩이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허리, 어깨, 손목 등 온몸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인 통증은 자전거를 자주 타다 보면 어느새 적응이 되는데,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는 길고 긴 오르막은 아무리 타도 적응이 안 된다.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이 동반되는 탓이다.


   ‘장거리’와 ‘급경사’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무장한 극악무도한 업힐을 오르다 보면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고, 두 다리는 자물쇠를 채운 듯 묵직하게 잠겨 온다. 꾸역꾸역 페달을 돌리다 보면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선크림과 범벅이 되어 두 눈을 찌른다. 따가움에 눈을 뜨지 못하는 그런 순간이 오면, 억눌렸던 짜증이 한꺼번에 폭발하고야 만다.


  "내리고 싶어. 내리고 싶어!! 나 도저히 못 할 것 같아!!"


   도저히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내리는 사람도 있고, 죽을 둥 살 둥 끝까지 페달에서 발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후자가 바로 나다. 내 지독한 오기와 끈기가 무거운 몸뚱이를 고개 정상까지 어거지로, 어거지로 끄집어 올린다.


  '애들 둘씩이나 낳았는데 내가 못 할 것이 뭐가 있어!"

  오르막길을 정복하는 것과 애 둘 낳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이 정도 오르막은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인다. 내가 정상에 올랐을때마다 느낀 성취감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자란다.




   나는 자전거를 빠르고 힘 있게 타지는 못한다.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이 속도계와 파워미터가 가리키는 숫자에 집착하곤 하지만, 내 기준에서 「자전거를 잘 타는 것」은 몇 개의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Speed와 Power보다는 Ballance와 Endurance가 중요하고, (기본 체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체력보다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40대 아줌마도 “자전거 잘 타시네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어린이나 노인들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재미있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미국의 금메달리스트이자 사이클리스트인 코니 카펜터 피니는 말한다. 강한 것이 항상 최고는 아니라고. 근육량이 부족한 이들은 이를 지식, 지구력, 의지력으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는 누구에게나 아주 평등한 기계라고 말이다.


   내가 고통을 즐기고,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의 장점으로 '인내심'을 내세울 만큼 남들보다 뛰어나게 인내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발 한발 천천히 페달을 밟다 보면 누구나 언덕의 정상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자기가 오르지 못하는 언덕을 끝까지 오르는 나를 보고 "인내심"이라는 미덕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리고 나에겐 정상에서 그대들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인내심이 있다.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와 나와 함께 정상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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