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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Jul 11. 2021

동해 해안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동해시에서 속초시까지 110km

-버스에 자전거 실어 본 적 있어?

-앞바퀴 탈거할 줄 알아?

-공용도로는 타본 적 있지?

-가민 맵 보면서 라이딩 해 본 적은?

-펑크 나면 튜브 교체할 수는 있어?

-여자들 셋이서 정말 갈 수 있겠어?


“어, 갈 수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가자!!!!”




  

  우리는 동해시에서 속초시까지 110km 라이딩을 계획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겠지만, 40대 아줌마 셋에게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동해시로 이동한 뒤, 자전거로 110km를 달려 속초시에서 도착. 속초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복귀하는 당일치기 일정이었다.


  초행길이라 길을 헤맬 수도 있고, 노면 상태가 안 좋거나 길이 끊긴 곳도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30km마다 한 번씩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시간당 약 20km 정도를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총 라이딩 거리가 110km이니, 대략 6시간 정도. 여기에 밥 먹고, 사진 찍고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완주까지는 8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버스 운행이 단축되어 출발 시간을 당길 수도 없었다. 첫 버스의 출발시간은 7시 40분이었다. 해가 진 뒤 야간 라이딩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수가 있었으므로, 빨리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서 시간을 줄여야 했다. 속초에서 7시 전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타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가장 걱정되는 문제가 타이어 펑크였는데, 우리 셋 중 펑크수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 중 누구라도 펑크가 나게 되면,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택시를 이용해 가까운 터미널로 복귀하는 것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었다. '뭐, 운이 좋다면 천사 같은 누군가를 기적적으로 만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2020년 6월 30일 오전 7시. 세 명의 아줌마는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집합했다. 동서울 터미널 버스 탑승장에는 우리가 타고 갈 동해행 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고속버스 짐 칸에 자전거를 싣는 경험은 우리 셋 다 처음이었다. 로드 사이클의 앞바퀴는 바퀴를 잡고 있는 QR레버만 돌려주면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앞바퀴 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었다. 부피를 줄여 차곡차곡 쌓는 것이 문제였는데, 다행히도 친절하고 경험 많으신 기사님을 만나 자전거를 쉽게 적재할 수 있었다.


  “뭐, 이거 걱정했는데 별거 아니네, 저 쪽 총각들보다 우리가 더 잘하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우린 동해행 버스에 올랐다.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동해 시외버스터미널. 동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작고 한적한 버스터미널의 모습과 바닷가 특유의 짭조름하고 비릿한 냄새에 나는 바닷가 낯선 소도시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내가 정말로 동해에 와 있다니!'

  이곳은, 내가 몇 번이나 와봤던 그 동해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한 여행이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이라 그런지 알 수 없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버스에서 자전거를 조심조심 내려 앞바퀴를 결합하고 QR레버를 단단히 잠갔다. 핸들바에 가민(휴대용 내비게이션 장치)을 장착하고 GPX 파일을 실행시켰다.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달리니 넘실대는 푸른 동해 바다와 동해 해안 자전거도로가 나타났다. 자전거도로에 진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오른쪽으로 바다를 두고, 바닥의 파란 라인만 따라가면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슬로모션으로 만나는 바다는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우리는 새우깡을 보고 애가 타는 갈매기들처럼 깍 깍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저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사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우와~~ 바다다~~~~~~~~~~~~~!!!!!!”

“와~~ 너무 예뻐!!”

“내가 살아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져~!!!!!”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우린 미리 계획했던 대로, 져지(자전거용 상의)를 벗고 빕(패드 바지)과 브라탑만을 걸친 채 자동차들과 나란히 해안도로를 달렸다.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우릴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바다이고 오늘은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이니까.

 

  오후 1시경 동해시에서부터 59km 떨어진, 동해와 속초의 중간 지점인 영진 해변에 도착했다. 영진해변까지 3시간 걸렸으니, 우리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알려진 영진해변은 한 가지 색으론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띄고 있었다.


  우리는 영진해변이 바라다 보이는 식당에서 물회로 점심을 먹었다. 6월 말이라 아주 덥진 않았지만, 자전거를 타고나서 먹는 물회 한 그릇이 주는 청량감은 한여름 못지않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 2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가 커피를 마셨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에 몸과 마음이 느슨해졌는지, 도무지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목표로 한 115km를 다 타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바다가 주는 평화와 여유로움을 맘껏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린 3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간호사인 MJ언니는 밤 근무가 있어 영진해변에서 먼저 복귀를 했고, 마라톤 언니와 나는 ‘40km 남은 양양터미널에서 중도 복귀를 할 것인가, 계획대로 50km 남은 속초 터미널에서 복귀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다. 지금까지 달렸던 것처럼, 남은 50km도 3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계획했던 속초까지 완주를 하기로 하고 폐달링에 속도를 냈다.


   오후 4시 반. 영진해변에서 주문진항과 휴휴암을 거쳐 서피 비치(surfyy beach)에 도착했다. 25km를 달리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라이딩 중간중간에 있었던 사진 명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오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피 비치로 향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인데, 이 아름다운 서피 비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라톤 언니와 나는 클릿슈즈와 양말을 벗고 모래사장으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바다로도 뛰어들었을 텐데..) 땀에 젖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고운 모래가 따뜻했다. 우린 해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서핑보트를 끌어안았으며, 해먹에 드러누워 몸을 흔들었다. 방갈로에 있는 라탄 바구니 안에는 병맥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맥주를 하나씩 나눠 들고 건배를 하며 신나게 들이키....고 싶었으나 흉내만 낼 수밖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 진심으로 고픈 순간이었지만, 원칙은 원칙이니까. 라이딩 중에는 술을 마실 수가 없다. 6월의 쓸쓸한 해변에서, 우린 한여름의 해수욕장에 있는 것처럼 뜨거웠고 행복했다.

 

  초여름의 해는 오후 5시를 넘기자 뉘엿뉘엿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제 속초시까지 남은 거리는 약 27km. 해가 지기 전에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라이딩으로 가민(내비게이션)의 배터리는 방전되어 버렸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더 이상 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철없는 아줌마들이 아름다운 서피 비치에 홀려서 너무 신나게 놀았던 것이다.

  

  우린 자전거길을 포기하고 자동차 공용도로를 선택했다. 공도는 자전거길과 같은 낭만은 없지만, 아스팔트 포장으로 노면 상태가 좋고 이정표를 보면서 달릴 수 있으니 더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남은 27km, 운동벙으로 신나게 한번 달려 보자고~~!!”

  우습게도 맘만 먹으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기세는 등등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80km를 내리 달린대다가, 해가 지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녹록지 않은 바닷바람에 우리의 다리가 무겁게 잠기기 시작했다. 폐달링이 점점 버거워졌지만 버스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쉴 수가 없었다.


   마라톤 언니와 나는 남은 27km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렸다. 이번에는 마라톤 언니가 선두를 섰다. 마지막 10km는 뒷심이 있는 마라톤 언니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언니의 등 뒤로 멀지 감치 흐르면, 다시 기를 쓰고 붙기를 여러 번.... 다행히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110km를 달리는 동안 펑크가 한 번도 나지 않은 것이다. 동해 해안 자전거도로의 노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고 곳곳에 공사구간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천사 같은 누군가를 만날 것도 없이, 저기 어디 계신 하느님이 우리를 어여삐 여겨 보살피셨나 보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나서야 우리는 지친 몸을 겨우겨우 다독일 수 있었다. 언니와 나의 몸에서는 장마철 걸레 냄새 같은 고약한 쉰내가 진동했고, 머리는 산발에 온 몸에는 소금기에 절은 때 국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었다. 거지 같은 몰골로 싸구려 햄버거를 먹으며, 우리는 웃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에 매력을 느낀다. 근육량이 부족한 여자들은 이를 지식, 지구력, 의지력으로 보완한다. 자전거는 아주 평등한 기계다. 왜냐하면 강한 것이 항상 최고는 아니기 때문이다.'

코니 카펜터 피니 (미국의 여자 사이클 선수. 미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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