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기는 사려 깊은 사람. 나와 다르게 상냥하고 다정한 그 언니를 나는 참 좋아했다.
자전거 동호회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여성 회원들의 출석률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가량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남자들만 나오는 라이딩 벙에 여자 혼자 출첵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그 언니는 내가 있어서', "나는 그 언니가 있어서' 우리는 둘이 의지하면서 참 신나게도 자전거를 탔다.
주말에는 동호회 정기 라이딩에서 만나고, 평일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날에는 매일 카톡을 주고받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작년 10월. 동호회에서 브롬톤이 있는 사람 몇몇이 모여 무의도로 투어 라이딩을 가기로 했다. 그날 아침 다른 사람은 모두 나왔는데 언니가 오지 않았다. 언니는 카톡으로 사정이 생겨 늦게 출발하게 되었으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잠진도 선착장에서 우리는 언니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언니는 끝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먼저 도착한 사람끼리 예정된 라이딩을 진행했다.
나중에 듣기로, 언니는 무의도로 오다가 도중에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그리고 언니는 조용히 동호회를 나갔다. 가까웠던 나에게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언니는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되었고, 나중엔 내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애를 써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떠나기로 한 언니의 결심은 확고한 듯했다.
나는 세상에 혼자인 듯 외롭고 쓸쓸했다. 모든 게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서 사람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 나. 이런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마치 오래된 연인에게 '잠수 이별'을 당한 듯, 상대방에게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애처로워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어느 날, 우리는 고속버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싣고 무작정 동해로 떠났어.. 동해 바다를 달릴 때 우린 너무 행복해서 모래알처럼 반짝였잖아. 지금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며, 서로의 가장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주었지.
KTX에 자전거를 싣고 목포로, 목포에서 다시 훼리를 타고 제주도로. 언니와 함께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보낸 3박 4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우리는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달렸고, 때를 지어 점핑하는 돌고래를 보기도 했지. 어느 날은 쨍하고 어느 날은 비가 왔지만 그것도 다 재미있었어.
하루의 라이딩을 끝내면 늦은 밤 바닷가를 산책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늦도록 맥주를 마시며 또 이야기를 나누었잖아.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돌아와 김포공항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우린 참 대단하다~"라며 서로를 칭찬했었지.
우리 브롬톤도 같이 샀잖아. 어렵게 구한 브롬톤은 어쩌다 보니 같은 컬러, 같은 모델이었어. 낑낑 대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응봉산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고, 뚝섬 한강공원에서 치킨에 맥주를 먹던 날. 그날도 나는 너무 행복했어.
아이를 낳고 10년 만에 처음 누리는 자유를 나는 언니와 함께 했고, 그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서.. 그게 그렇게 즐겁고 좋았었나 봐.
6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게는 그녀를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했다.
"언니. 오래간 만에 연락을 하네요. 시간이 지나니 용기가 생기나 봐요. 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 행복했어요. 그 기억들을 아픈 기억으로만 간직하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언니가 떠난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면서 내가 사과를 한다는 것이 언니의 마음을 더 언짢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나의 무신경한 말들로 언니에게 상처 준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표현은 부족했을지라도 언니에 대한 마음은 늘 진심이었어요.
언니.. 언젠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할게요.."
며칠 후 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나에게 미안해할 것은 없어요.
나도 2년 동안 정말 가깝게 지내왔는데 급작스럽게 연락도 끊고 했으니. 일방적인 행동이었지..
나도 그러고 나서 한동안 조금은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고. 그냥 그냥 살아...."
늦게라도 답장을 보내 준 언니가 고마웠다. 언니도 그렇게 떠나고 한동안 힘들었구나..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우리의 절교로 힘들어한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의 실수도 바로 잡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예전처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때마다 생각나는 그 언니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