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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01. 2019

미드소마 (Midsommar, 2019)

아리 에스터가 만들어 낸 기이한 'home'

    <유전>의 감독 아리 에스터의 신작 <미드소마>를 봤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미드소마, 즉 하지제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를 a24에서 선보인다고 했을 때부터 궁금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스웨덴어 제목 그대로 (물론 스웨덴 영화는 아니지만) 가져왔다는 것도 신기하다. 원제 'midsommar'에서 'sommar'는 영어의 'summer'이고 즉 하지제를 뜻한다. 나는 지난 6개월간 스톡홀름에 거주했다. 단 이틀 차이로 미드소마 행사를 못 경험하고 떠나야 했던 점이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돌아온 한국에서 이에 관한 영화를 보게 되다니. 


스웨덴 북유럽은 여름이 다가올수록 해가 길어진다. 영화 초중반에 버섯에 취한 친구가 왜 지금이 아직도 9시냐고, 해가 왜 이렇게 밝냐고 화내는 장면이 있는데 살아보면 실제로 그런 말이 나온다. 창밖을 아무리 봐도 '아직도?'라는 말 밖에 안 나오는. 낮 두세 시에 해가 지던 겨울에 비하면 좋지만 새벽 세시에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다 보면 금세 다 짜증 나게 느껴진다.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이는 하지제에 스웨덴의 한 작은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포크 호러, 민속 호러라는 장르를 띤다.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가진 한 사람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home'을 찾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음을 놓일 안식처를 찾는 이야기. 이 공동체인 '호르가'가 그 안식처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함을 가진다. 기이함이 느껴지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고어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지만 못 볼 정도는 아니다.




    주인공들이 호르가 마을로 들어갈 때 카메라가 위아래로 완전히 뒤집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부터 바깥 사회와는 단절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걸 간접적으로 와 닿게 한다. 다른 인물들은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나,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주인공 대니는 잘 녹아든다. 바깥 사회에서는 제일 가까운 인물인 가족들, 오래 만난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조차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는 반면, 호르가에서 새로이 만난 인물들은 그녀를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준다. 그녀는 그 보호받는 느낌이 좋았을 터, 의구심이 들면서도 적응하고 결국 여왕의 자리에도 오른다. 


영화는 끝에 호르가 마을은 사실 어떤 곳이고,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초대받았는지를 모두 설명한다. 내내 많은 것들을 설명해서 엔딩에 다 짊어지고 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엔딩이 오히려 임팩트가 덜 한 것 같고. 러닝타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고 들어가서 영화가 끝났을 때 한 110분 정도 됐으려나 했는데 보니 2시간도 훨씬 넘는 영화였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았다. 초반부터 곳곳에 감독이 던져둔 단서들이 틈틈이 끼워 맞춰질 때 짜릿했다. 호흡을 많이 사용한 사운드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가끔은 기이해서 우습지만 현장감이 대단했다.

 

    그저 고어한 영화인 줄만 알고 보러 갔는데 기존에 잘 못 본 새로움을 아리 에스터가 제시한 것 같아서 좋았다. 누군가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여자의 영화라고 하고, 누군가는 호러 영화, 고어 영화라고, 또 누군가는 힐링 영화라고 하는데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 우리는 곧 주인공 대니가 된다. 현실에서 대니를 불안하게 한 일들은 모두 처벌받거나 사라지고 (특히 실망스러운 연인 크리스티안), 기괴하지만 대니에게만은 따뜻한 공동체는 곧 그녀의 집이 된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본인과 대니를 동일시하며 각본을 썼다고 했다. 실제로 힘든 연애의 끝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역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트라우마가 가득한 한 사람이 새로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찾는다, 는 어쩌면 간단한 얘기를 포크 호러라는 장르와, 미드 소마라는 특정한 이벤트와 장소, 고어함을 모두 엮어서 아리 에스터 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점. 비범하다고 느꼈다. 특히 모든 걸 완벽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정교한 연출이 그랬다. 




    <유전>에 이어서 버금가는 작품을 만든 아리 에스터도 대단하고, 주인공 대니를 맡은 플로렌스 퓨의 연기도 대단했다. 사실 처음 그녀를 봤던 <레이디 맥베스>에서의 충격은 따라갈 수 없지만, 극을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앞으로 두고두고 새로운 작품들이 기대되는 두 사람. 


    영화를 보기 전에 스웨덴 공동체에 들어가는 데 과연 영어 영화에서 스웨덴어가 어느 정도로 리얼하게 사용될까 궁금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스웨덴 사람들은 워낙 영어를 잘하니까. 생각보다 스웨덴어가 많이 나와서 보는 내 재밌었다. 특히 스웨덴어 일부는 관객들이 일부러 못 알아 들어야 하니까 한글 자막이 나오지 않는데 이 부분이 재밌었다. 사실 대단한 대사는 아니고 '집에 온 걸 환영한다거나' 호르가 공동체가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장면들인데 (물론 대니조차 그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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