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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샐리 Jun 09. 2022

미국에서 이직하기

    이직에 성공했다 라는 글을 이미 올렸지만  년가량의  이직 연대기에 대해 조금  자세히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과정과 감상을 정리해봤다. 이직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인터뷰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직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많은 정보를 얻기도 해서 나의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공유한다.




이직을 결심한 이유


    내가 처음 이직을 생각했던 것은 입사 만 1년이 막 지난 작년 7, 8월 정도다. 7월에 큰 연봉 인상이 있었던 이후로 몇 주간 나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불안해졌다. 큰 기쁨이 생기면 오히려 부정적이고 불안해지는 심리적 현상이 있다는데 내가 딱 겪던 증상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늘어난 것도 기쁘고 회사 사람들과도 친해졌지만 이러다가는 이 편안함에 안주해 평생 이 회사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단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이야 좋지만 회사가 언제 나를 자를지도 모르는 거고 잘렸을 때 다음 직장을 찾기 용이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Golden Handcuffs) Dead End 직장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월급까지 많이 올려준 회사 입장에서는 배은망덕하겠지만 어쨌든 뻔뻔하게도 나는 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생각에 불을 지핀 건 연이은 동료들의 퇴사였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서른 명 남짓한 동료 중 5명이 퇴사했다. Great Resignation 트렌드에 맞춰 더 좋은 기회를 잡아 떠난 것이겠지만 이번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나에게 연이은 직원들의 퇴사는 빨간 깃발을 올리는 일이었다. 퇴사한 동료들이 전부 나보다 이 회사에 오래 재직했기에 경험이 많은 그들에게는 보이는 이 회사의 단점을 내가 못 보는 게 아닐까? 이 회사는 가라앉는 배고 그들은 능력이 있어 탈출을 하는데 나는 부족해서 함께 가라앉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또 이직하기에 너무 좋은 이 시기를 놓치면 점점 이직이 힘들어질 거라는 조급함도 어느 정도 있었다. 전 직장은 텍 스택 (tech stack)도 오래됐고 proprietary tool(회사 내부 툴..?)을 주로 사용하고 클라이언트들과 미팅을 하는 등 코딩을 제외한 업무로 시간을 많이 보내서 개발자로서의 나의 가치는 이 회사에 오래 머물수록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이직을 한다면 지금밖에 없다 라는 직감이 들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밀리(강아지)가 골육종에 걸린 후 밀리와의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2달에 한 번씩 밀리가 있는 본가에 다녀왔는데 그러려니 차라리 재택근무를 하는 일을 찾아 본가에서 사는 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 또 부모님한테는 부끄러워서 얘기 못했지만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그리웠던 것도 있다.


    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되면서 느낀 것은 회사를 선택할 때 정말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일 때는 당연히 돈을 제일 많이 주는 곳이 최고가 아닌가 (그래서 첫 직장을 선택한 것이긴 하다...) 생각했는데 겨우 2년 일했다고 회사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돈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하는지, 보험은 어떤지, 지역은 어딘지, 어떤 텍 스택인지, 수요가 많은 분야인지, 등등 어차피 한 직장을 평생 다닐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지금 당장뿐만이 아니라 미래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직하기까지의 과정

    

    이직을 결심 한 이후로도 실제 이직에 성공하기까지는 거의 일 년가량이 걸렸다. 결심만 했을 뿐 인터뷰를 보기에는 너무 부족한 실력이었기에 7월부터 10월까지 아는 언니와 함께 주에 한번 코딩 스터디를 했다. Leetcode에서 easy 몇 문제, medium 몇 문제, hard 몇 문제씩 골라 스터디 전에 풀고 구글밋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풀이를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 한 스터디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는 한국에 있어 시차 때문에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 참 못할 짓을 했다 싶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 준비하기 모티베이션이 떨어지는데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는 스터디가 도움이 많이 됐다.

   이때 한 공부가 기초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스터디를 하면서도 실력이 는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서 많이 의기소침했는데, 반년 후에 다시 알고리즘 공부를 할 때 훨씬 습득 속도가 빨라진 걸로 봐서 아주 효율적인 공부 방법은 아니더라도 뭐든 꾸준히 하면 결국은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한 3개월 코딩 연습을 하고 자신감이 생긴 나는 Indeed에서 엔트리 레벨 일을 보이는 데로 지원을 했다. 1년 이상의 경력이 있지만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이 없었고 회사에서 한 업무를 경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거라 생각을 했다 보니 경력직이 아닌 엔트리 레벨 공고만을 찾았다. 많은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특성상 인터뷰를 보기 위해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데 지원을 많이 할수록 볼 인터뷰도 많으니 정말 가고 싶은 회사만 지원을 했으면 덜 지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인 공고를 낼 때 연봉 범위를 기재해야 하는 주 (콜로라도가 그렇다) 도 있지만 아닌 주도 있기에 연봉이 얼마일지 모르다가 스크리닝 때 현재 연봉보다도 낮은 연봉을 알고 내가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어떤 일이던 합격만 하면 기쁠 것 같던 학생 때와는 다르게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벌다 보니 직장을 선택할 때 더욱 까다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이직 때는 꼭 가고 싶은 회사만 골라 지원을 할 것이다.


   직장인의 신분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은 학생 때와는 많이 달랐다. 앞서 언급한 비교군(현 직장)이 있기에 덜 간절하고 눈이 높아지는 점도 다르지만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목표가 취업이던 학생 때와는 다르게 다니는 회사에서의 업무도 있다 보니 인터뷰와 준비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뷰 준비야 내가 게을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크지만 인터뷰를 볼 때마다 매번 휴가를 낼 수도 없고 또 너무 휴가를 자주 내면 직장에서 내가 딴마음을 품을 걸 눈치 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쉽게 휴가를 내지도 못했다.

    다행히도 하이브리드 스케줄로 주에 3일은 재택근무를 했었기에 점심시간 중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콜로라도 시간으로는 12시더라도 동부시간으로는 오후 시간대라 오히려 시간 맞추기는 더욱 수월했다. 만약 내가 재택근무 중이 아니었다면 이직을 하기 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서 회사들이 직원들을 출근하게 만들러고 하는 건가??


일 년 내내 인터뷰를 본 건 아니고 11-12월, 4-5월 이렇게 두 번의 시즌에 각각 3-4개의 회사와 인터뷰를 봤다. 내 경험상 인터뷰 과정은


레주메-> 폰 스크리닝/OA->코딩 인터뷰(1-3 라운드)/테이크 홈 프로젝트/

페어 코딩 인터뷰-> 컬처 핏 인터뷰-> 오퍼



    정도가 스탠더드인 듯싶다. 타임라인은 회사마다 다른데 곧 설명할 G사처럼 말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나고 연락을 주는 막돼먹은 회사도 있고 오퍼를 받은 회사처럼 한 달 정도가 걸리는 회사도 있다.


    10개가 조금 안 되는 회사들과 인터뷰를 한 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스크리닝, OA, 테크 인터뷰, 핏 인터뷰 등등을 거치고 이 회사가 바로 내가 갈 회사구나 자신감에 차 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스타트업은 파이널 인터뷰를 앞두고 Hiring Freeze 때문에 인터뷰를 중단하는 등 별 일을 다 겪었다... 그중 제일 어이없었던 것은 OA를 보고 2달 후에 인터뷰를 잡자며 연락이 오더니 또 한 달간 연락이 없다가 최근에 연락을 한 G 사다 (구글 아니다). 아무리 고스팅 당하는 게 빈번하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ㅠㅠ. 여하튼 나도 기분 상해서 이번에는 내가 고스팅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런 쓸데없는 마음고생을 했나 싶지만, 오퍼를 받은 회사의 2라운드 때의 인터뷰가 느낌이 좋았어서 매일같이 채용 공고를 확인했는데 화요일에 공고가 내려가서 '아 벌써 오퍼가 다른 사람에게 갔구나' 생각하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수요일에 익일 아침에 VP 인터뷰를 잡자고 하고는 바로 오퍼가 나와서 정말 쓸모없는 마음고생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오퍼가 갔는데 거절해서 나한테 기회가 온 건지 아니면 내가 일 순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다. 그런 건 하나도 상관없다. 여하튼 혼자서 가정하고 삽질하는 짓은 그만두자! 쓸데없이 기분만 나쁘다.





이직 과정 중에 느낀 점


    이직을 준비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원래부터 이 분야에 큰 흥미가 있거나 실력에 자신감이 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을 다니는 내내 그럭저럭 했으니 중간이나 중간 이상쯤은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는데 인터뷰를 보면서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되니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본인의 위치를 타인에게 확인받는 건 (특히 그 위치가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낮다면)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반복되는 실패에 많이 지친 것도 사실이다. 지치니 무기력해져 열심히 하지 않고 좋지 못한 사이클의 반복이다.


    학창 시절 때 조금 더 열심히 할걸 후회도 됐다. 성적을 받기 위해 딱 필요한 정도의 공부만 하는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왔었다. 무언가를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해본 적이 없으니 내가 붓고 있는 노력이 정말 최선인지 매번 의심이 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적당히 하려다가 순식간에 고꾸라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성인이 되기 전의 나의 평탄한 인생은 내 능력이 아니라 부모님의 능력이었구나,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내 노력과 선택에 달렸는데 이런 어중간한 태도로 살다가 정말 큰일 나겠구나 느꼈다. 지금껏 너무 인생을 쉽게 살아왔구나... 그리고 앞으로 운만 가지고 요행을 바라기는 점점 힘들어지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전공을 선택하고 이 분야를 선택한 게 정답이었다는 안도도 들었다. 이직하기에 너무 좋은 시기에, 수요가 많은 테크 필드에서도 이직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는데 다른 인더스트리였다면 얼마나 더 어려웠겠나. 또 릿코드 유형의 문제만 죽어라 파면 어쨌든 6 figure 연봉이 충분히 가능한데 이런 인더스트리가 또 어디 있나 싶다. 힘들긴 했지만 그건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본인의 실력만 출중하다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분야기에 운이 좋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 전부 알 텐데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나는 이런 어중간한 의지로 내 밥그릇을 챙길 수 있을까,,





마치며


    일 년간의 마음고생이 끝나서 너무 후련하고 좋다. 물론 아직도 이직하자마자 리세션(Recession)이 와서 잘리면 어떡하지, 혹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오퍼가 캔슬되면 어쩌지, 다음 이직은 또 얼마나 어려우려나 등등의 걱정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내 나쁜 버릇 탓이고 상황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웹에 있는 이직에 관련된 글 중에 가장 많이 힘들었다 찡찡거린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많이 힘들었다! 우습게도 학생 때 취준 할 때보다 힘들었다. 그때는 3개월을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1년을 준비했다. 당연히 4배로 힘들었다.

    지난 일 년간 이직 관련 글을 보며 글쓴이의 침착한 태도에 더 우울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답게 훌륭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데 나는 왜 어째서 이렇게 힘든 걸까 수 없이 자책했다. 그리고 이직 글의 끝은 항상 이러이러한 실패와 노력 끝에 결국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류의 해피엔딩인데, 어쨌든 당신은 결국 성공했잖아 라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기 일수였다.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결국 성공한 남의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번이 내 마지막 이직일 리가 없다. 그리고 다음 이직은 더욱 수월할지 아니면 오히려 더 어려워질지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절대 첫술에 합격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또 우울해져 땅을 팔 텐데 그때의 나를 위해 남기는 글이기도 하다.

수고했고 고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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