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8월에 안녕을 고하며
마음이 이상하다.
아빠의 암 투병이 다시 시작되고 내 사랑 김여사를 못 본 지 2년이 넘어서 일까? 나는 싱가포르 국경일 노래를 들으며 한국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이상한 샐리 씨가 되었다.
Home -홈이라는 단어만 봐도 눈물이 난다.
자꾸만 수도꼭지 모드가 지 마음대로 발동한다.
그립고 그리운 고국과 가족 생각에 나는 싱가포르에서 그들의 국경일 노래에 또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8월은 원래도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가득 담아 왠지 모르게 가슴 뜨거운 달인데 싱가포르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마음이 달뜨고 뭔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속에 맺히는 달이다.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9 일 말레시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로서 자리한 지 올해로 56년째가 되었다.
매해 8월 9일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National Day라 불리는 이날은 아주 성대한 국가적인 축하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매년 이 국가의 날 내셔널 데이에 맞춰 테마송이 제작되어 발표되고 가장
큰 국가행사 중 하나로 꼽히며 싱가포르 국민들을 단합시키며 애국심이 넘치게 만드는 날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아주 축소된 형태로 날짜도 12일가량 연기되어 8월 21일에 치러졌다.
불꽃놀이와 퍼레이드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무심히 티브이를 틀어 놓고 꽤 오래 싱가포르에 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이 성대한 행사를 나름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한다. 엄마를 닮아 뜬금없는 삽질을 잘하는 아이가 얼마 전 내셔널 데이 테마 노래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는 싱가포르 로컬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자고 해 둘이서 열심히 삽질하며 시청한 터이라 나름 각 노래들에 대한 사전 지식도 있어 처음으로 이 행사를 아주 제대로 진지한 모드로 감상해 보았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웬일!
남의 나라 잔치에 순두부 갬성 샐리 씨, 눈물이 터지고 만다. 노래가 주는 힘일까? 스토리가 가진 힘일까? 갑자기 며칠 전에 봤던 그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오버랩되면서 남의 나라 국경일 노래인데 나의 가슴에 뜨겁게 자리 잡고 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 곡을 쓴 작곡가는 당시 해외 체류 중으로 자신의 고국 싱가포르를 그리며 곡을 썼다고 했다. 일반적인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로 싱가포르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국경일 노래로 1998년 발표된 후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다. 매해 발표되는 여느 국경일 노래와는 다르게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무언가 가족과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첫 소절부터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무언가가 피어오르게 하더니, 'This is home truly - 이곳이 진정한 나의 집' 하는 순간’home’이라는 이 한마디 가사에 그만 울컥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버린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내 꿈이 기다리는 곳
내 모든 감각이 집이라고 말하는 그곳
내가 혼자가 아닐 그곳 “
이라고 이어진 가사에 나는 그만 주책스럽게도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있는 이곳,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이곳도 나의 집임이 분명한데 나는 또 다른 “home” 그 어디를 그리며 이렇게 외롭게 울고 있단 말인가?
나의 꿈도 있고, 소중한 인연들로 좋은 사람들과 혼자가 아닌 이곳, 내가 집이라고 부르는 싱가포르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는 또 어떤 '집'이 이리도 사무치게 그립단 말인가?
그러자 마음속에 한국과 나의 부모님이 두둥실 떠오른다. 내 마음이 아직도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곳은 백발의 나의 노부모가 쪼그라진 얼굴과 주름진 손으로 날짜를 꼽으며 행여 올해는 볼 수 있을까? 하며 코로나로 2년을 못 본 중년의 딸,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나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곳이 내게는 아직도 진정한 집이었다. 눈감아도 찾아갈 수 있는 우리 집 앞, 정다운 길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학교, 엄마와 도란도란 장을 보던 그곳…
내가 그토록 그리움에 사무쳐 밤마다 날마다 가슴에 새기고 새기던 그곳. 항상 영원히 그곳에 엄마, 아빠와
함께 나를 기다릴 것만 같던 나의 집이 나를 반길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요즘 부모님이 자꾸 이별을 연습시킨다. 나도 어느덧 새치를 걱정하며, 얼굴 주름살이 못내 아쉽고 뼈마디가 쑤시는 그런 나로 나이가 들어가는데 아직도 새파랗게
젊디 젊은 청춘 인양 내 나이도 부모님 나이도 망각한 채 그 어느 시절,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이 새 까맣던 그때 그 시절이 영원하리라 생각했는데 자꾸만 엄마가, 아빠가 안녕을 연습시킨다. 미리 연습한 이 이별은 실전이 다가왔을 때 나를 덜 아프게 할까? 나는 나의 가슴속에 그리운 그 "집” 에게 덤덤하게 안녕을 말할 수 있을까?
그 이별 후에는 'This is home surely'라고 말하는 가사처럼 어디를 확실하게 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나 보던 진부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고 정확하게 의미도 몰랐던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길을 가다가, 수업을 하다가 문득 또 티브이를 보다가 남의 나라 국경일에, 남의 나라 잔치에 아니 어쩌면 하나밖에 남지 않는 나의 집이 있는 곳이
될지도 모르는 이곳, 싱가포르에서 가슴 뜨거워지는 말 “고국의 우리 집” 그곳을 생각한다. 그러면 때로는 찔금하고 눈물이 살짝 맺히고, 때로는 울컥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때로는 이렇게 엉엉하고 목놓아 울어버리는 그리움에 마음이 떠내려간다.
진정한 집이란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그곳, 아니면 내 가슴속에서 따뜻함과 그리움이 피어나는 그곳이 아닐까? 아니면 온 마음을 다해 내 가슴이 향하는 그곳이 바로
나의 "집"이 아닐까? 이제는 내가 우리 아이에게 그런 집을 만들어 주어야 하겠지?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이?
내게 진정으로 확실하게 마음 따뜻해지는 집,
나의 노부모가 나를 기다리는 한국의 그 "집”이 자꾸만 사그라든다. 백발성성한 노부모님과 같이 자꾸만 사그라든다. 내 가슴도 같이 쪼그라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브이 속에서 이제 행사가 절정에 이르며 폭죽이 터지고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밤하늘에 찬란하게 수를 놓는 불꽃을 보며 뜨거워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의 '집'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그 "집"이 눈부시게 따뜻하기를 가만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