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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Yang Aug 07. 2023

50살, 이직에 성공하다

아직 늦지 않은 시작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무실 밖을 뛰쳐나가 숨을 쉬고 돌아와야 했던 날들이 반복될 즈음 휴직을 했다.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2-30대가 아니었으므로 무턱대고 나올 수 없었다. 쉬는 동안 7단계의 과정을 거쳐 이직에 성공했다. 한국과 영국을 거쳐 미국에 와서도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일을 해봤지만 규모가 큰 미국회사에 지원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1) 이력서 접수 2) 회사 시스템에 지원서 및 정보 작성 3) 온라인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비디오로 녹화해서 올리기 4) 전화 인터뷰 5) 대면 인터뷰 6) 온라인 시험 7) 백그라운 체크(마약/범죄 관련 검사 및 구비서류 보내기)를 통해 최종 합격 되었고, 한 달 반 정도 소요되었다. 이번 주에 첫 출근을 했는데, 출근 전 날 늦게까지 집 안을 청소하고, 브런치에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었다. 일기를 쓰듯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려고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쓴 글이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버렸다. 


첫 출근 날부터 미국의 큰 회사답게 짜인 스케줄에 따라 온라인 트레이닝 코스가 시작되었다. 경력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봉이 낮아지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구조, 스트레스 레벨이 높지 않은 직업군, 퇴근 후에 라이프가 보장되는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첫날 퇴근 후에 집에 와서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 풀타임 직원이라 함은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는 기준으로 한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셈인데, 보통 9-6시, 9-5시, 혹은 8-4 그리고 점심시간 1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8:45-5:30으로 30분 쉬는 곳도 있고 따로 점심시간 없이 알아서 쉬는 곳도 있다. 나는 점심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일해보지 않았는데, 새로 들어온 곳이 그랬다. 엄밀히 말하면 없는 것은 아니고, 30분 정도 쉴 수 있지만 추가로 30분을 일해야 하기 때문에 별로 선택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첫날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많은 질문과 서류가 오고 갔는데 점심시간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음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서 굶었고, 둘째 날부터는 간식을 싸가서 중간중간 먹었지만 그나마 놓쳐서 못 먹는 날도 있었다. 밥을 먹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뭘 먹는 것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중간에 알아서 쉬면 되는데, 일이 익숙해지고 시간에 따라 일처리 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면 쉬는 시간에 대한 조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한 번도 일하지 않은 분야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일주일 동안 각종 트레이닝과 인수인계 등을 받으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영어였다. 나와 같은 날에 입사한 사람이 미국 전역에 30명 정도 되는데 함께 줌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이 팀은 6개월 동안 함께 한다고 한다 (이 말은 트레이닝이 6개월이라는 뜻이다). 30명 중 단 한 명의 동양인도 없었고, 100% 미국인이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특히 어딜 가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미국인들만 있는 회사는 처음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해외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수업을 들으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피드백을 계속 말해야 하기 때문에 초집중해야 했다. 쉬다가 와서 그런지 뇌가 빨리 영어를 인지하고 말하는 것에 속도가 느린 것 같이 느껴졌고, 말하는 걸 신경 쓰다 보니 말이 더 잘 나오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해주는 분이 8월 중순까지 함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정보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금요일이 되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심정으로 탈출할 시간만을 기다렸다. 


아직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 이번주는 나아질 수 있을까? 

벌써부터 내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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