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직장 문화
이직한 직장에서 2주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일주일에 하나라도 써보자로 바꾸었다. 사람마다 적응하는 기간이 다르지만, 이번에는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서른 살에 한국을 떠나 스웨덴과 영국에서 5년, 미국에 온 지 15년이 되었으니 해외 생활 20년 차이다. 어디를 가던,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던 비교적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과 잘 지내고, 적응력이 좋은 편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른 살까지 한국에서도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직장 문화는 잘 알고 있다. 물론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부분도 있겠지만 상하관계, 나이, 성별에 의한 차별이나 불이익 그리고 회식 문화 등 한국에 있을 때도 그런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다. 미국의 직장에도 분명 그런 것들이 존재하고, 회사마다 차이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한국인 직장 동료는 백인들만 있는 회사에서 엄청난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나 현재 상황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확실히 한국의 직장보다는 자유스러운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여자 나이 50살이면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나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전 직장에서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무도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다. 퇴근 시간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전 직장은 로펌에서 Paralegal로 일했는데,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정시에 퇴근했고 집으로 일을 가져오거나 (개인 셀폰에 회사 이메일은 설치하지도 않았었다), 휴가 기간에 일에 관련된 전화를 받은 적은 없었다. 물론 휴가가 끝나고 돌아오면 몇 백 개의 이메일과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고통스러웠지만 휴가 및 병가를 낼 때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신청하면 승인이 났었다. 현재 직장도 Salary 가 시간당 책정이 되기 때문에 출퇴근할 때 Time Sheet에 체크만 하면 된다. 이 부분도 회사마다 다른데 전 직장에서는 지문으로 Time Sheet이 인식되었고, 추후에는 얼굴인식 시스템으로 바뀌었었다. 현 직장은 시스템 안에 입력만 하면 되는 것이라서 하루 지나기 전에 하면 된다. 물론 지난 몇 년 동안 몸이 기억하는 시간 입력에 대한 의무가 자동적으로 생성되어 Time Sheet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미국의 직장도 회사나 직업군마다, 혹은 인종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전 직장은 로펌이어서인지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감시문화였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카메라가 있는 업무환경이 편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사실 회사는 어떤 방법으로든 직원의 업무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대놓고 하느냐, 현 직장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느냐의 차이일 뿐 인 것 같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 보고 있는 것처럼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 직장이 한수 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경쟁구도보다는 서로를 도와주려고 하는 문화와 친절함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어떤 도움이라도 필요하면 당장 달려올 것처럼 도와준다는 회사의 경영 방침은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도움과 격려로 일의 능률을 높여 직원의 이직을 최소화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한 번 고용되면 불가결한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 고객과의 관계, 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곳에서 긴 시간 동안 트레이닝을 거쳐 어느 정도 적응된 직원의 잦은 이직은 결국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복리가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앞서 말했지만 월급이 시간당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오버 타임으로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가장 좋은 점은 눈치 보지 않는 칼퇴근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로움 뒤에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