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빵으로 맞은 현타
오른쪽 발이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왼쪽 발을 빼보려고 하지만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는 진흙탕에 빠진 발은 빼면 빼려고 할수록 더 깊이 땅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어서 마지막 힘을 다해 겨우겨우 빠져나와서 휴~ 이제 살았구나 하고 바위에 걸쳐 앉아 쉬면서 한숨 돌렸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내가 가야 할 맞은편을 바라보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산이 턱 하고 버티고 있었다.
이직 후 새 직장에서 2주 차를 마무리하고 3주 차로 들어설 때쯤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처음 시작할 때 마찬가지였다고 모두 격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실수를 비롯해, 아는 사람에게는 쉽지만 모르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시스템을 익혀며 수없이 많은 문서를 읽어야 했다. 규모가 큰 회사이고 investment 분야가 신용과 정직, 도덕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규칙과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1번 내용을 몰라서 리서치를 하다 보면 참조 내용 2번이 나오고, 2번을 읽다 보면 또 다른 내용이 나오는 식이다. 결국 회사 Help desk에 전화를 하거나, Live chat으로 질문 내용을 물어본다.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원하는 답을 얻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다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팀에서도 새 직원이 왔을 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당장 일이 더디게 돌아가니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고, 과연 이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입사 후 3개월 단위로 이직을 고려하거나 3, 6, 9 단위로 스트레스가 찾아온다는 것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통계로 잘 나와있다. 오죽하면 작심 3일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현실이라는 배에 올라타서 스스로 노를 저어서 배가 움직이기까지 상황 파악이 잘 안 되고, 파악했다고 해도 노를 저어 가는 방법을 모르거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전에 일했던 로펌보다는 업무 강도가 덜하고, 일의 성격 자체가 촉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있었으면 해결하지 못했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물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는 열려있었지만 상당한 프레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테스트처럼 느껴지고, 어려운 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답을 몰라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기분은 안정권에 접어들 중년의 나이에 경험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주가 지났고 내일은 금요일이다. 무사히 하루를 보낸 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한껏 기죽은 나에게 스스로 위로를 건넨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어도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