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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Yang Aug 21. 2023

“왜 웃어요?”

회사는 감정을 토로하는 곳이 아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친절한 사람의 전화를 받거나 만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친절해야 하는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로펌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떤 고객의 질문 사항에 답하다가 살짝 웃음기 있는 말로 아, 그런 이야기 아니고요라고 말을 했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기분이 상했는지 고객이 “왜 웃어요"라고 되물으며 기분 나빠한 적이 있었다. 무시했거나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내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때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다른 로펌에 이민 변호사로 있는 K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객 앞에서는 절대 웃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 K 가 입사했을 때 늘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시니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퇴근 후에 식사하는 자리에서 보니 하얀 이를 보이며 잘 웃는 사람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고객이 알아야 할 정보를 감정 없이 촘촘히 잘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다시 친히 전화를 해서 내 목소리가 기분 나쁘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지, 목소리가 이래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8년 동안 3군데 다른 로펌을 다니면서 고객을 상대할 때, 혹은 동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너무 차가운 것도 좋지 않은, 적당한 선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조금만 그 라인을 밟아도 “삐”하는 신호를 만나야 하고 의도치 않게 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당하기 벅찬 업무 강도, 잘 맞지 않는 직장 상사, 직원을 마치 노예나 일하는 기계처럼 대하는 문화, 만족하지 못하는 셀러리나 베네핏 등도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인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위에 해당하는 모든 상황을 다 겪어본 나는, 그렇다면 어떤 회사를 가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그런 회사가 존재하기는 할지 늘 의구심이 들었다. 주변에 회사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에 사는 지인들 중 회사에 애완견을 데리고 와도 되는 곳이 있었고, 심지어 회사 내에 Bar에서 술을 먹을 수도 있는 곳도 있었다. 어떤 회사는 레스토랑보다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는 회사 내 식당과 다양한 액티비티를 비롯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치원과 헤어컷을 해주는 차가 회사 안에 들어와서 편하게 서비스를 받게 해주는 곳도 있었다. 그 직장에 다니는 분의 말로는 밖에서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회사 안에서 빨리 해결하고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별천지였다.


휴직 후 이직을 준비하면서 내가 고려했던 점은 Work-Llife Balance가 잘 되어 있는가, 회사는 직원에게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가였다. 돈은 많이 벌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업무 강도가 세거나 타이틀은 거창하지만 감시와 평가로만 직원을 대하는 곳에서는 결국 오래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주를 보낸 새 직장에서 과연 내 바람을 실현할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몰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며, 조직 안에서 불편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상사 및 동료와 상의할 수는 있지만 회사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새로 온 직원에게 멘토를 지정해 주는데, 그 멘토와 점심을 먹고 받은 웰컴 기프트에서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던 C의 마지막 날, 함께 일했던 보스가 선물과 카드, 케이크를 사서 송별회를 해주면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상황이 펼쳐질 때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혼자 속으로 살짝 당황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전 직장을 나갈 때 아무도 나의 존재를 인식해 주거나 잘 가라는 인사조차 없었던 것을 보면 이 직장은 좀 더 사람을 케어해 주는 곳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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