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07
군대란 게 참 이상하다.
가장 낮은 위치, 가장 낮은 사람으로 들어가다 보니
그동안 안 보였던 것들이, 못 봤던 것들이 보인다.
마치 오색찬란한 감정들이 새로 나한테 들어와서,
처음 보는 색들로 장식되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감정들, 그 색깔들을 꺼내어 보면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다시 보인다.
군악대로 배치받고 처음 맞이한 주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다.
서로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억지로 지어낸 표정이 엉망이었지만
그 웃음조차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 함께 먹었던 오리고기,
맛보다 그 장면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가족이 다 함께 웃고 있는 식탁,
그 장면 전체가
내 기억 속에 아주 예쁜 색으로 칠해져 있다.
한 번은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군대에서 나오면 다들 그렇듯,
친구들과 약속을 빽빽하게 채워놓고
집엔 거의 붙어있지도 않았다.
그때도 그랬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잘 놀다 와" 하면서 봉투를 하나 쥐여주셨다.
그냥 그러려니 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신나게 놀았다.
그동안 갇혀 있었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하루라도 더 많이, 더 길게 밖에 있으려 애썼다.
그런데 복귀 전날,
숙취로 찌뿌둥한 얼굴로
어머니와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자랑을 하셨다.
우리 아들 휴가비,
엄마가 직접 벌었어.
동네에서 천 받아서
재봉틀로 박음질해서 받은 거야.
진짜 등신같은 놈.
나 자신에게 욕이 튀어나오는걸
겨우 참았다.
그때 알았다.
내가 받은 봉투,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엄마는
내가 휴가 나간다고 말했을 때부터,
며칠이고 재봉틀 앞에 앉아
그 봉투 안의 돈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하루종일
만든 봉투를
세어보지도 않은채로
나에게 줬나보다.
그 봉투를,
나는 그냥 쥐고 나가 신나게 놀았다.
그 안에 뭐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 채로...
엄마는 자랑이었을 거다.
아들 휴가비를 직접 벌었다는 걸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가슴이 유리에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받은 건 돈이 아니라,
내가 모른 마음들이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과연, 내 자식을 낳으면
내 부모님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고령화, 출산율 부족.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감정을 꺼내면서
다시 한 번, 과연 그것만 있을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내 나이가 결혼 적령기인 만큼,
그리고 내가, 우리가 겪어온 세대는
아마 단단한 가족의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모두가 함께 아침밥을 먹고,
해 질 무렵 놀이터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불러들이던
그 풍경,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과연 자신이 있을까?
이런 가족을 겪어왔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사회에서
다시 이걸 반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이등병부터
조금 살만해지는 상병이 될 때까지,
마치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잠시 뒤를 돌아본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처음 봤다.
앞서 달릴 땐 보이지 않던 얼굴들이,
뒤에 서 있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힘든지,
누가 울고 있는지,
누가 조용히 웃고 있는지.
세상이 그렇게
복잡한 색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았다.
20살이면 다 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되어서야
내 도화지 위에 색이 칠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시절 나는
세상의 색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