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의 비빌 언덕이었다

#_06

by 살짝미친 바나나

웃고, 울고, 기대며

나는 그 안에서
아주 작게,
하나의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타를 조금 칠 줄 안다는 이유로

나는 군악대로 배치됐다.

감사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훈련소를 마친 나와,
비슷한 이유로 뽑힌 두 명이
군악대 버스에 올라탔다.


서로 이름도 잘 모르던 우리는
그날부터 '동기'가 됐다.

다 같이 어색했고,
그 어색함 속에서
우리는 이상하게 빠르게 가까워졌다.


처음 자대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악보를 볼 줄 몰랐다.
다른 애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 보였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치만 봤다.


매일 밤,
행정실에서 야간 점등을 하며
조용히 악보를 익혔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고들 하지만,
내 경우는 말이 머리보다 빨랐다.


악보를 잘못 보면 욕이 날아왔고,

틀리면 무조건 내 탓이었다.


한 달을 그렇게 욕 먹으며 익혔다.
‘매가 약이다’라는 말이
그때만큼은 좀 이해가 됐던 것 같다.


한 번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던 그 겨울,


우리 셋은

이등병끼리는 들어가면 안 되는 PX에 몰래 갔다.


그 닭꼬치 하나가 뭐라고,
그게 참… 그렇게까지 먹고 싶었나 보다.


닭꼬치 하나에 그렇게 신났던 날은
살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6화 닭꼬치 사고 튀는 장면.png


숨을 헐떡이며 뛰었고,
배보다 웃음이 더 먼저 터졌던 날.


그런데 돌아오다가
운동장 한가운데서
닭꼬치를 떨어뜨렸다.


다들 말없이 멈췄고,
아직 사회의 통념, 체면이
덜 빠졌던 건가?


배가 고픈데도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서로가
그렇게도 웃겼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닭꼬치를 주워 들었다.
아무 말 없이.
그걸 보고
나도 같이 주웠다.


흙 묻은 닭꼬치를
셋이서 나눠 먹었다.

진짜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모래알이 씹히고
흙이 가득 묻어 있었는데,
그만한 맛을 가진 닭꼬치는
그 이후로도 없었다.


그렇게
색이 빠지고 물들어 가듯


ChatGPT Image 2025년 6월 25일 오후 02_46_50.png


서로의 색깔에,
군대라는 색깔에
우리는 조금씩
물들어 간 것 같다.


그 겨울, 내 생일


그날도 선임들한테 욕을 먹었고,
새벽엔 경계근무가 있었다.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았고,
사실 나조차도 까먹고 있었던 날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에 들어오자
동기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야, 화장실… 두 번째 칸 가봐.”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 안에는
젓가락으로 동여맨 뽀글이,
작은 과자 몇 봉지가 있었다.


변기 위에 차려진
생일상 이었다.


6화 _ 변기위에 생일상.png


불도 없었고, 촛불도 없었고,

노래도 없었지만
그건 평생 잊지못할

진짜 생일상이었다.


그걸 만든 마음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서
나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비빌 언덕은 두고 온 줄 알았다.

다시 만드는 법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로운 자리에서
조금씩, 정말 조금씩
모양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키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작은 조각씩 꺼내어
서로에게 붙이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들.
그렇게 대가 없이 서로의 조각을
떼서 주는 모습이 그렇게 좋았나보다.


그걸 겪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언덕은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6화 퍼즐처럼 맞춰지는 바나나.png


그리고 그걸 함께 만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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