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08
나는 늘 낮은 자리에 있었다.
군악대에서 내가 맡은 악기는 ‘수자폰’이었다.
튜바와 비슷한 금관악기,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악기였다.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그 소리로 오케스트라의 바닥을 받치고 박자를 잡고,
모든 음의 기준이 되었다.
그 감정이, 묵직하고 따뜻하게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처음엔 그저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배정받았다.
수자폰은 16에서 20kg에 가까운 무게였고,
그걸 어깨에 둘러맨 채 1~2시간씩 서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군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에 나가면
그 무게 그대로 퍼레이드를 돌고,
행진하고, 제식 각을 맞추며 걸어야 했다.
군악대의 군기는 각을 딱 맞추는 걸로 평가받는다.
무게도, 피로도, 고됨도 핑계가 안 됐다.
수자폰을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이걸 내가 해야 하나 보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 악기가 나와 잘 맞았다.
수자폰은 모든 소리의 기준이다.
곡을 시작할 때, 모든 악기의 튜닝은 나부터 시작한다.
내 소리가 정확해야
그 위에 쌓이는 모든 소리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
내가 내는 소리는 가장 낮고,
가장 넓고, 가장 오래 퍼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었다.
내가 낸 따뜻하고 묵직한 한 음이
모두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크게 퍼지는 울림.
시간이 지나고, 연주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곡의 분위기에 따라 감정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처음, 합주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박자를 맞추고,
그 위에 다양한 음들이 층층이 쌓인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로.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곡이 된다.
그게 참 뭉클했다.
마치 아무 조건 없이
'내 위에 올라서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른 소리들이 빛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주는 역할.
섹소폰, 플루트, 트럼펫처럼
화려한 소리들은 가장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소리들 사이에서
내 소리가 빠지면 전체가 지저분해진다.
밑을 잡아주는 울림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그 합주의 순간순간들이
그저 음악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앞에서 빛나기 위해선
그 뒤에서 무게를 버티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걸,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해내고 있다는 것.
나는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의 가치를 배웠다.
누군가의 화려함 뒤에 있는,
말 없는 무게와 조용한 울림들.
그렇게 곡을 연주하고 나면,
나는 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정이 '예술'이었던 것 같다.
단지 소리를 내는 걸 넘어,
그 소리 안에 사람을 담는 일이.
어쩌면 모든 예술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가장 낮은 음으로 모두를 감싸는 역할,
그 안에 있는 묵직한 존재감.
나는 그렇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울리던 하나의 소리로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만든 울림은
어딘가에 분명히 스며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