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어진 단추를 다시 푼다는 것

#_11

by 살짝미친 바나나
“좋은 모양이 되기 위해,
잘못 꿰어진 단추를 끝까지 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단추를 다시 푸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전역을 하고,

복학 신청을 하러 가기 전날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목욕탕에 갔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15일 오후 03_56_58.png


그 시절엔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었고,
우린 종종 그렇게 뜨거운 김을 마시며
말 없이 등을 밀어주던 사이였다.


그날은 내가 아버지 등을 밀었다.
군대를 갓 마친, 조금은 더 단단해진 몸으로.
아버지는 조용히 앉아 계셨고, 나는 묵묵히 등을 밀었다.


그게 마치 어떤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전역한 아들’이 ‘아버지’를 밀어주는 날.
조금은 든든한 장면.


나는 먼저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마루엔 늘 그렇듯

고스톱을 치는 아저씨들이 앉아 있었다.


삶이 묻어있는 웃음,

뻥도 섞인 자식 자랑 릴레이가
조용한 목욕탕 공기를 따뜻하게 채웠다.


누구는 장학금을 받았고,

누구는 공무원 시험에 붙었고,
누구는 대기업에 다닌단다.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간절하게 바랐다.


제발, 우리 아버지 차례는 오지 않기를.

ChatGPT Image 2025년 7월 15일 오후 04_12_02.png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아버지께 물었다.


“형님 아들은 요즘 뭐 해요?”


아버지는 나를 한번 슬쩍 바라보더니,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를 걸고 말했다.


“이제 가자.”

그 한 마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 장면이
그날의 모든 소리를 지워버렸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목욕탕의 김,
타일 벽에 부딪히는 물소리,
그리고 어색하게 웃던 아버지의 표정.


혹시라도 전역한 자식이 기죽을까
자기가 먼저 기죽은 걸 들키지 않으려
아버지는 그렇게 웃었다.


그게 참 미어졌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아버지는 잘못이 없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주지 않았던 건 없었다.


나는, 받은 만큼 해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15일 오후 04_18_22.png


그건 적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의 문제였다.
나는 ‘안 했던’ 사람이다.
노력을, 책임을,
계속 미뤄왔던 사람이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를 작아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목욕탕 마루 위에서 마주했다.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꾹 눌렸다.
원래 있었던 돌덩이였는데, 이제서야 발견한 느낌.


어디선가 “너, 여기 다쳤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그제야 아픈 줄 알게 되는 기분.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저녁 공기 속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 같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첫 단추를 잘못 낀 채로
끝까지 꿰려고 했을 뿐이다.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을 입고
괜찮은 척을 하며
어떻게든 한 개 더, 두 개 더
끼우려고 했던 거다.


아직 몇 개 꿴 상태라면,
다시 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다음 날,

ChatGPT Image 2025년 7월 15일 오후 04_17_07.png


복학 신청을 하러 학교에 갔다.


군대에 있을 땐 그렇게도 그리웠던 잔디밭.
교정을 걷는 학생들.


그 속에 섞인 내가, 왜 이리 이질적인지.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렇게 말할 예정이었다.


“복학하려고요.”


3초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1초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내 입에서는
생전 처음 꺼내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자퇴하려고요.”

이전 11화요란한 기세의, 빈수레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