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일은, 다시 흔들리는 일부터였다

#_12

by 살짝미친 바나나
좋은 모양이란,
누가 만들어준 길이 아니라
내가 만든 흔적으로 생기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근데, 마음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더 단추를 채우면, 평생 후회할 거야.”


그렇게 나는, 삶에서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확신을 준 날’을 맞았다.


“복학하려고요.”

3초 전까진, 분명히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1초 전까지도 마음속 시뮬레이션은 그랬다.

그런데 입에서는
한 번도 연습해본 적 없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저… 자퇴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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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뱉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리는 아찔했고, 손끝이 떨렸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내 뇌는 “복학하자”고 외치고 있었고,
그걸 내 마음이 붙잡고 던져버린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끼우면 평생 후회할 거야”라는
작고 단호한 목소리가,
그 순간 나를 움직였다.


말을 뱉고 나니 담당 교수가 날 쳐다봤다.
눈빛에 당황이 가득했다.


곧바로 교수실로 불려갔다.
조교도 함께 있었다.
적막이 흐르고, 그 안에 묻힌 질문이 나왔다.


“왜 자퇴하려는 건데요?”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다시 시작하려고요.


재수든, 편입이든…
이번엔 제가 직접 선택한 학교에 가고 싶어요.”


말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공기가
나를 조롱하는 듯 느껴졌다.


예상은 했지만, 둘 다 웃었다.
피식 웃더니, 교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부모님 연락처 좀 주세요.”

아, 진짜… 그 순간 식은땀이 났다.


나는 집을 나올 때
“복학신청 하고 올게요”라고 말했는데,
지금 교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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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드님이 자퇴를 하겠대요.
군대 갈때 휴학건도 그렇고, 참 즉흥적이죠? 그쵸? 하하…”


나는 숨을 참았다.

그 통화 뒤, 교수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부모님이… 자퇴하라는데요?

벙쪘다. 진심으로.
이게 무슨 상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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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포기당한 건가?
아니면 그냥 손 놓으신 건가?


나중에 들었는데
그냥 믿어보기로 하셨단다.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 판단을, 일단은 지켜보기로 한 거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길에 스스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학교에 있으면,
직장에 다니면,
어느 정도는 앞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선배가 가는 길을 보며,
‘아 저런 루트가 있구나’ 하고 따라가면 된다.


교수님의 전공, 선배의 이력서,
부장의 커리어, 팀장의 연차.

그게 ‘표지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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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는 이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수많은 길, 수많은 시간,
그리고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 선택지.

그 안에서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지만,
내 마음은 그 길을 믿었다.
내가 내뱉은 말을
스스로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기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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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돌아와도 이 선택을 할까?’
지금도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됐다.


그리고 나는 움직였다.

비틀거리고, 허둥대고,
어떨 땐 눈물도 나왔지만


내가 내린 선택이 맞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이게 맞는 선택이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는 그날부터, 막무가내의 노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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