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01
내가 인생에서 처음 맞닥뜨린 중요한 선택은
내가 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그냥 밀려가는 삶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고등학교에 가고,
방과 후엔 학원에 가고,
겉으론 성실했지만, 속으론 놀고 먹고 게임하고
자는 게 더 익숙한 나....
그게 나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어떤 목적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오히려, 놀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얘 잘놀아"
그게 나에 대한 긍정적 평가였고,
내가 스스로 만든 정체성이기도 했다.
“이제는 진로를 정해야지.”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부모님 없이 혼자 상담실에 들어갔고,
선생님은 내 점수를 보더니
“여기, 여기, 여기 정도는 가능하겠다.” 하고 말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 인생 첫 진로 결정이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우스운 일이다.
“이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과
“이 학교에 가고 싶다”는 건 다르다는 걸
그땐 몰랐다.
아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선택이 되어 버렸다, 대학에 갔다.
기분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선택한 적 없는 결과는
별 감정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학교는, 놀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출석을 안 해도 시험만 보면 점수가 나왔다.
나는 강의보다 사람을 택했고,
과제보다 이야기를 택했다.
누가 봐도 낙오의 길.
하지만 나 스스로 낙오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그냥 계속 걷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내가 생각하면서 걷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볼 줄도 몰랐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정해진 길 위를 따라 걸으면
당연히 나도 어딘가 도착하겠지 싶었다.
그 길 끝에 뭐가 있는지,
정말 내가 거기에 가고 싶은지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그때의 나에게 한참을 설명하고
한참을 설득해야 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 질문 없이,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