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어 사전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지만 듣자마자 이해되는 놀라운 언어 사전

by 이새란


우리 가족은 뿔뿔이 가족이라, 일주일에 서너 번, 퇴근길과 주말엔 엄마, 아빠, 때로는 오빠에게 전화를 한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통화를 하는 날이 가장 많은데, 나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먼저 딸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한 반가움이 가득 묻어 있고, 때때로 하루의 고단함이나 개운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독립한 지 어느새 14년 차,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서로의 목소리로 만나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 이제는 전화를 받는 한 순간의 목소리만으로도 엄마의 기분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감탄을 하게 되는 표현들이 있다. 그때마다 아, 꼭 기록해놓아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생각난 김에 몇 가지 남겨본다.


2019년 여름 가족여행. 순천만에서


목소리도 누워있나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활동적이지만 스위치가 꺼지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쉬는 엄마. 그리고 나도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야근을 하고 9시쯤 퇴근한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트롯이나 사랑의 콜센타 등이 방송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의 스위치를 끄고 일찍이 주무시는 편이기 때문에 9시가 지나면 전화를 안 하는 편인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목소리에 잠이 서려있어 물었다.


나 : 엄마~ 뭐 하고 있나요?

엄마 : 자려고 누웠다.

나 : 아이고, 자다가 깼나 보네요.

엄마 : 아이다. 왜, 목소리도 누워있나.


그래, 이거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되는 엄마식 표현. 목소리만 듣고도 엄마의 피곤함과 자세가 눈에 선한 나에게 이 표현은 그야말로 찰떡이었다. 이제, 엄마의 목소리가 누워있으면 간단히 안부를 나누고 전화를 끊는다.




입만 갔다 온다.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휴일이나 주말이면 해야 할 일이나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는 일정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계획한 대로 하루가 완벽히 흘러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계획은 세워 놓고, 그대로 흘러가면 그래서 좋고, 변수가 생기면 생기는대로 좋다.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는 7시에 일어나 등산을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피곤하니까 쉴까. 산책을 나갈까. 오늘 문 여는 책방을 가볼까. 하고 그냥 계속 궁리를 하는 거다.


어느 주말 오후, 계획했던 일정을 미루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엄마가 전화를 받자, 나는 괜히 게으른 하루를 이실직고했다.


엄마 : 딸~ 주말 잘 보내고 있나.

나 : 등산 갈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요~

엄마 : 그래. 엄마도 천왕산 갈까 했는데, 그냥 입만 갔다 왔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 계획을 세우고 바꾸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입만 갔다 온다’라는 말이 너무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래 나는 주말에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하며 내 입을 여기저기 잘도 보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식 표현을 정리해야지 맘을 먹고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엄마, 이번 글은 엄마 얘기로 쓰고 있어요.

엄마 : 와카노~ 뭔데? 쓰지 마라.

나 : 엄마가 가끔씩 하는 엄마식 표현 있잖아요. (위 두 이야기를 들려줌)

엄마 : 내가 그런 말을 썼나?

나 : 네, 기억 안 나요?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엄마 : 한두 개 더 있을 텐데.. 그건 내가 의식을 하고 하는 말이 아니라서

나 : 맞아요. 앞으로 더 잘 듣고 모아보도록 하겠심 데이~



자주 하는 통화이지만, 더욱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이야기라도 순간을 잘 잡아두지 않으면 금세 날아가버린다는 것도 깨달았으니, 그때그때 기록으로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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