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환갑, 모악산의 아침에서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다
61년에 태어난 아빠가 61번째 생신을 맞았다.
환갑이라니, 어린 시절 TV에서 본 환갑잔치는 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진행하는 그야말로 한바탕 ‘잔치’였는데. 거기 아빠의 얼굴을 붙여 넣기 해보려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환갑은 옛날처럼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어서 주변에 물어봐도 간단히 가족끼리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간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추석과 설날 모두 집에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의 환갑은 꼭 챙겨드리고 싶었다. 대단한 일은 하지 않더라도 거제와 통영, 고성과 서울에서 뿔뿔이 떨어져 지내는 우리 가족에게는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등산 가족의 특성을 살려 간단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진안 마이산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마이산 주변의 여행지를 찾다 보니 전주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대학생 때 내일로 여행으로 전주에 방문했을 때, 아빠가 거기가 전주 이 씨인 우리의 뿌리가 있는 곳이라며 잘 둘러보고 오라고 했던 사실이. 나는 아직 못 가봤다~라고 흘려 말하셨던 사실이.
그렇게 1박 2일의 여행지를 정하고,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관광을 오롯이 즐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숙소는 이번 여행의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러다 우연히 ‘모악산의 아침’이라는 숙소를 알게 되었다. 20대 초중반의 ‘모아’님이 호스트로,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만든 곳이라고 했다.
일단 사진 속 숙소의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커다란 통창을 통해 보이는 모악산과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높은 층고를 가진 거실은 누구나 반할만한 공간이었다. 사진 속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낮잠에 빠져들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거실뿐만이 아니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의 1층과 2층에는 총 4개의 방과 4개의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여기다. 집 짓기에 관심이 많은 아빠가 참고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고, 우리 가족이 이 공간에서 머무르는 그림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다만, 이 숙소는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공간이다. 흔히 여행을 가서 즐기는 바비큐도 할 수 없다. 맘 편히 쉬러 가는 곳에서 다소 불편한 규칙이나 제약이 있다면 가족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고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향유하면서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작은 부분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의 규칙이 뚜렷한 공간이나 모임을 좋아한다. 그럴수록 더욱 애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이런 불편을 환영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숙소는 예약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숙소예요’라고 말하자, 아빠는 음식물 쓰레기는 집에 가져와서 비료로 쓰면 된다고 말했고, 엄마는 고기를 구워 먹는 대신 집에서 캔 땅두릅을 가져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시내와 가까워서 놀랐고, 생각보다 커서 놀랐으며, 방 하나하나가 정성이 가득해서 놀랐다. 그 커다란 집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거실에서 CD를 틀면 높은 천장을 타고 소리가 가득하게 퍼졌다. 내가 쉽게 감동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모악산의 아침’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최고의 숙소였다.
짐을 옮기고 있는데, 부엌을 둘러보던 아빠가 ‘안녕하세요. 모악산의 아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ㅇㅇ님 가족분들이 오늘내일 행복한 추억 가지고 가시길 바랄게요’하며 엽서를 읽어 내려갔다. 아빠의 생신이라고 사전에 말씀드렸더니 부엌 식탁에 와인 한 병과 소중한 엽서를 남겨두신 것이다. 감동을 하니 자연히, 체크인 문자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1박 2일의 여행에서 4시에 체크인을 하고 11시 30분에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원래는 11시 퇴실이지만 다음날 예약이 없어 조금 더 머무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따로 또 같이, 그 공간을 오롯이 즐겼다. 1층의 2인실은 엄마 아빠가, 2층의 2인실은 오빠네 부부가 차지했고, 나는 남은 1인실 중 고민하다 1층에 머물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방은 2층의 1인실인 일명 ‘시인의 방’이었다.
‘모악산의 아침’에서 머무르면서 잊지 못할 기억을 많이 만들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던 순간이다. 우리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게 정말 오래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울컥했고, 60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아빠와 엄마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듣는 게 좋았다. 어린 시절 이런 일을 겪었고,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모님에게서 우리의 아빠와 엄마가 아니라, 그냥 당신 자신으로서의 삶을 그리시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 아빠는 결국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 게 삶이라는 맥락의 이야기를 하셨다. 4년 6개월 전 희망퇴직을 하고 쁘띠 귀농을 하신 아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직장을 다니며 곧 퇴직을 앞두신 엄마는 앞으로 살아갈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데, ‘누군가 일군 땅에서 내가 또 다른 것을 일구고, 내가 일군 땅을 누군가에게 전하며, 또 다른 누군가가 일군 땅에서 나의 새로운 삶을 일구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영향력을 주고받는데, 선한 영향력은 타의보다는 자의에 의한 것이며 그 힘은 생각보다 크다는 의미로 와 닿았다.
다음 날, 퇴실을 앞두고 엄마는 평소에 즐겨 뜨시는 수세미를 다섯 개 가져오셨고, 아빠는 직접 대나무로 만드신 주걱 세 개를 꺼내셨다. 우리 부모님은 마음을 움직인 공간에는 꼭 무언가를 선물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받았고, 진심을 남기고 싶으셨던 거다.
작은 글씨로 우리 가족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어제 오후 와인이 올려져 있던 식탁에 놓고 나왔다. 오후 늦게, 너무 고맙다는 모아님의 문자를 받고서, 나는 어제 아빠가 이야기 한 선한 영향력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모악산의 아침 계정에 들어갔다가, 이 계정을 팔로우하는 나의 친구들이 몇 명 있는 것을 보고, 별건 아니지만 그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비약을 해버렸다.
나는 엄청난 행동가는 아니지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움직임에 쉬이 감동한다. 모악산의 아침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숙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