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말라꼬"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리는 계속 됩니다.

by 이새란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스무 살에 홀로 상경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생활이 어느덧 14년 차. 이곳의 일상이 익숙해지는 만큼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니, 집에 내려가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아야 일 년에 예닐곱 번 정도 될까.


그러다 보니 집에 내려가면 무언가 추억을 만들고 싶다. 작은 여행을 떠나도 좋고, 숨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좋다. 옆 동네의 산에 오르거나, 마당에서 미나리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도 이벤트가 된다. 그런데, 내가 무언가를 하자고 말을 꺼내면 아빠는 말버릇처럼 이렇게 답한다.


“아빠, 점심 먹고 새로 생긴 카페 가서 커피 마셔요!”

“말~라꼬!”


아, 이 야속한 한마디. 아빠의 ‘말라꼬’ 한방이면 이런저런 궁리와 함께 차오르던 흥이 ‘푸슈슉’ 하고 가라앉았다. 직역하면 ‘뭐 하려고’, 의역하면 ‘뭐 하러 쓸데없이 그런 일을 벌이니’하는 뜻으로, 귀찮음과 무의미함이 가득 묻어 들려왔다.


생각해보면, 아빠의 ‘말라꼬’가 잦아진 건 30년이 넘게 다닌 조선소에서 희망퇴직을 하신 2016년 가을 이후로 추정된다. 퇴직 후 연고 없는 시골에서 쁘띠 귀농을 하시곤, 지금까지 잘 적응하며 살고 계시는데, 텃밭과 정원을 일구는 데 여념이 없는 당신을 위해 가족들이 뭔가 궁리를 하는 것이 좀 쑥스러우신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저 귀찮아서일 확률이 높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빠의 ‘말라꼬’로 인해 나의 제안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경우는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는 대부분 못 이기는 척 가자는 곳으로 가, 하자는 일을 함께 하신다. 이왕 할 거 ‘쫌’ 처음부터 기분 좋게 하면 안 되나, 살짝 불만을 품기는 하지만, 어느새 나는 아빠의 ‘말라꼬’에 내성이 생겨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만 크고 작은 일을 만드는 딸내미가 되었다.


얼마 전 아빠의 환갑을 기념하여 떠난 짧은 여행에서, 아빠 얼굴이 들어간 축하 현수막을 자그마하게 만들었더니 아빠는 “아이고 별나다 별나. 말라꼬 이런 걸 다 만들었노” 하셨지만, 다음 날 아침 말끔히 세수를 마치고 현수막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다가 내게 딱 걸리셨으니, 그 진심은 나와 같았으리라.


행복했던 가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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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책읽아웃’의 진행자 김하나 작가님은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아버지의 말버릇인 “만다꼬”에 관하여 소개하는데, ‘뭐 하러 그렇게 애쓰니’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 세 글자는, 힘이 빡 들어간 일상에 지칠 때, 깊이 숨을 고르며 힘을 빼라는 주문 같은 말이 된다. BTS 멤버 뷔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여 아버지의 “그므시라꼬(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힘들어하니)”라는 한 마디를 소개하며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는 말로 오히려 동기부여를 해주셨다는 일화를 털어놓았다. 태형이 아버님,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아빠의 ‘말라꼬’를 이렇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뭐 하러 힘든 일을 꾸미니, 딸아. 나는 그저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단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까짓 거 같이 하자! 이번엔 또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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