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누군가에게 우리 가족에 대해 소개할 일이 있다면, ‘뿔뿔이 가족’이라고 말하곤 한다. 서울과 통영, 거제와 고성(경남)에 각각 떨어져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거제에서 출발했으나, 오빠와 나는 일찍이 독립했고, 아빠는 조금 이른 퇴직 후 고성에서 쁘띠 귀농을 시작하셨다. 여전히 거제에서 직장생활 중이신 엄마는 주말마다 아빠를 만나러 고성으로 향하신다.
우리에게 ‘뿔뿔이 가족’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화목한 만큼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단톡방에 이모티콘 하나씩을 남기며 안부를 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는 가득하되 간섭은 하지 않고’ 살아가는 편이다. 무언가 중차대한 걱정이나 고민거리를 안고 연락하여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도, 부모님은 신중히 고민을 들어주시고는 늘 이런 결론을 내리신다.
“마,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로 큰 의지가 되는 내 가족 덕분에, 홀로 멀찍이 떨어진 서울에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던 2021년 2월 2일, 예상치 못한 카톡이 날아들었다.
[아빠♥] [오전 11:04] 사진 3장을 보냈습니다.
매일매일 텃밭과 정원을 가꾸시느라 가족 단톡방 지분율 꼴등인 아빠가 갑자기 사진을 보내다니. 궁금함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살짝 확인해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배시시- 웃고 있는 하얀 강아지 사진이 등장한 것이다. 아니, 분명 엊그제 나랑 이런 대화를 하지 않으셨나?
“아빠~ 시골에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보시는 건 어때요?”
“아이고, 말~라꼬!”
어쩌다 이웃집에서 데리고 왔다는 하얀 강아지는 진돗개의 모습을 일정 비율 담고 있는 ‘시고르자브종’으로 추측되었다. 업무적으로나 취미적으로나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는 곧장 ‘이리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빠가 사진에 이어 올린 동영상에서 ‘이리 온나~’하고 부르는 것에서 착안했다. 마침 우리 가족이 이 가(家)이기도 하고.
아빠는 그날 이후 시도 때도 없이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하며 가족 단톡방의 지분율 1위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오랜만에 거제에 내려가 집에서 부모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팍팍한 서울살이에 치일 때면 훌쩍 거제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복이다. 그렇게 즐겁고 설레는 맘으로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주하는 아빠의 얼굴에 자꾸만 딴생각이 비쳤다. 눈은 자꾸 힐끔힐끔 시계를 향했다. 영 신경이 쓰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아빠는 조금 망설이다가,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며, 리온이가 너무 눈에 밟혀서 빨리 고성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순간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때때로 반려견과 주인이 분리되면 주로 반려견이 불안함을 느낀다던데, 주인도 마찬가지구나. 그런데, 그 주인이 무뚝뚝한 우리 아빠라니! 우리 집 막내 이리온의 랜선 언니로서 나도 나름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매일 온기를 나누며 강아지를 먹이고 재우는 아빠는 어느새 커다란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고성에 잠시 들러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하던 리온이와 한바탕 놀았다.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니. 아빠가 불안해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리온이는 어느새 마당에 피어난 꽃을 밟아도 용서가 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이제 아빠는 1박 2일 이상 고성을 비울 수가 없다며 애정이 가득한 불만을 내비치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리온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면서, 어렸을 때 나를 어떤 눈빛과 마음으로 바라보셨는지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