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는 희미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바닥에는 갑 티슈가 떨어져 있었다. 그제야 어제의 약속이 생각났다.
“엄마, 밤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이걸 바닥에 떨어뜨려요.”
큰 수술을 마치고 쉬이 밤잠에 들지 못했던 엄마는 밤새 두세 차례 화장실에 가야 했다. 병상을 지키던 나는 병원 소파에서 피곤함에 못 이겨 쉽게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여러 번 불러야 깰까 말까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티슈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목을 다친 엄마는 혼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밤새 요의를 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우당탕 소리에 쪽잠에서 깨어나면, 나도 모르게 순간 날이 섰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듬고 눈을 비비며 엄마의 오른편으로 향했다. 지금은 ‘1. 일어난다. 2. 간다.’로 끝나는 일이 그때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누워있는 엄마의 목을 조심스레 손으로 받친 후, 베개를 빼낸다. 한 손으로는 계속 목을 받치면서, 목 보호대의 뒤판을 가져다 댄다. 곧장 보호대의 앞판을 얹는다. ‘찌익-’ 찍찍이를 붙여 고정한다. 다음으로, 침대 아래 손잡이를 잡고 ‘돌돌돌’ 돌린다. 그러면 침대가 접히면서 엄마가 기대어 앉을 수 있다. 링거는 침상에서 이동식 링거 꽂이로 옮기고,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조심스레 일으킨다. 조금씩 천천히 화장실로 향한다. 돌아와서는 같은 일을 역순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해가 뜨기 전까지 한두 차례 같은 일을 반복한다.
2017년 5월 7일.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사촌 동생 결혼식을 마치고, 온 가족이 빨간 마티즈에 올라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나는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고가 나던 순간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은 조각조각의 장면들로 파편처럼 남아있다.
- 갑자기 차에 진동이 전해져 잠에서 깨어난 순간
- 차가 좌우로 요동치던 장면과 비명
- 조수석에 있던 아빠가 손을 뻗어 핸들을 꼭 잡는 장면
- 그리고 눈을 질끈 감은 순간과 온몸으로 전해졌던 충격
눈을 떠보니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채 한참을 미끄러져 멈춰 있었고, 오빠는 부서진 안경에 얼굴을 다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수석 문은 찌그러져 버렸고, 아빠는 큰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으나 다행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타박상만 입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의사소통은 가능했으나, 몸에 감각이 없다고 하셨다.
사고의 충격으로 목을 다친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엄마는 머리에 무거운 추를 매다는 응급처치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단 몇 분만 면회가 허용되었고, 그마저도 인원의 제한이 있어 5일 중 한두 차례 엄마를 마주했던 것 같다.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도, 중환자실에 힘겹게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5월 12일,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6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마친 후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엄마의 회복을 위해 온 가족이 정성을 다해 간호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엄마는 한 달 정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셨다. 한 달에 한 번 가던 외래 진료도 3개월, 6개월, 1년으로 점차 빈도가 줄더니, 이제는 가지 않으셔도 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사고 전 한 달에 한 번 지리산에 오를 정도로 건강하던 엄마는, 큰 수술을 이겨냈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고, 아직 사고의 잔상에 잠 못 이루는 날도 잦다. 갑작스럽게 전과 달라진 스스로를 마주하는 엄마의 마음을 평생 감히 헤아릴 수는 없을 거다. 그래도, 못난 딸은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무리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실 수 있게 자주 전화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일까.
4년 전, 수술을 마친 엄마를 간호한 경험은 나에게 아주 커다란 인상으로 남아있다. 특히, 갑 티슈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며 날이 뾰족하게 서는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단잠에서 몇 번이나 깼을까. 그때 느꼈을 고단함과 내가 느낀 찰나의 피곤함을 비교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고가 어버이날 하루 전이었다는 사실은 꽤 새삼스럽다. 사실 엄마의 카카오스토리에 들어가 한참 스크롤을 내려서 날짜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에 미리 써두었던 어버이날 편지를 병실 머리맡에 붙여두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2021년의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아무 일 없는 척 안부를 나누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늘이 사고 난 지 4년 되는 날이더라고요. 요즘 몸은 좀 어때요?”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 한다.”
“네, 무리하지 마시고요. 저녁은 먹었어요?”
“그래 방금 무따. 내일 오빠야 온단다.”
“네, 어버이날이니까 오빠야랑 맛있는 거 드세요! 사랑합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