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방송작가예요"

'꿈'을 가지게 되는 순간에 관하여

by 이새란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느 순간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상상 속 캐릭터 ‘빙봉’처럼 기억의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린 단어.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의 10대를 지배했던 단어.


학창 시절, 꿈이란 곧 장래희망이었고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는 물음으로 풀이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군가 너는 꿈이 뭐냐고 물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방송작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마치 월드스타가 된 아이돌을 데뷔 때부터 좋아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가지는 팬처럼, 나는 비록 막연했을지라도 남들과는 다르고 무언가 재미있어 보이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거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방송작가를 열렬히 꿈꾸었고, 동아리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오직 내 목표는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꿈을 어떻게 갖게 되었나,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의 계기가 있었다.



첫째, 어린 시절 글로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분명 학교 도서관을 좋아하거나 일명 ‘문학소녀’라 불리며 읽고 쓰는 것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착실하게 일기를 쓰는 학생이긴 했다. 등교 전, 아침에 컴퓨터 책상에 앉아 전날의 일기를 타이핑하고(글씨체는 꼭 ‘당근’이어야 했다.), 인쇄하여 풀칠을 슥슥 한 다음 노트에 붙여 학교에 제출했다. 일기 아래 짧게 써주시는 담임선생님의 코멘트가 좋아서 일기장을 돌려받는 하교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부모님께 편지 쓰기 대회’에 출전했고, 아마 장려상 같은 것을 받았을 거다. 상이라곤 개근상 말고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이 자극이 되어, 중고등학생 때는 이런저런 백일장에 나갔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그 이름도 생소한 ‘참방’이라는 상을 받았다. ‘과거에 급제하여 방(榜)에 이름이 들었음’으로 해석되는 ‘참방’은 정말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려상’도 마찬가지. ‘빼어나게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 별로는 아니고... 이름 정도는 넣어 주겠음.’ 어디 가서 자랑하긴 그렇고 혼자 뿌듯해하기엔 적당히 좋은 그 ‘옛다’스러운 상이 나를 꿈틀대게 했을 거다.




둘째,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 선생님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미국인 비행사 A.Smith가 선보인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사를 꿈꾸었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는 병원에서 약을 지어주던 간호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 의약분업 전이었다.) 어떤 때는 교탁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멋진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직업을 꿈으로 품으려면 그 직업은 내가 알고 있거나, 들어봤거나, 본 적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멋진 어른'은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촌언니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이미 예능프로그램의 메인작가였던 언니는 이름난 프로그램들에 이름을 올리며 그 프로그램들보다 더욱 이름 난 사람이 되었는데, 무튼 나는 그렇게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일 밤 자기 전 들었던 라디오 부스 안을 상상하며,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꿈이 없는 것이 고민이라던 친구들 사이에서, 방송작가라는 뚜렷한(척하는) 꿈을 가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사실 좀 부끄럽다. 꿈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꿈을 가지고 결국 그 꿈을 이루더라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방송작가를 꿈꾸던 나는, 결국 방송작가가 되었고, 2년을 일했고, 때려치웠다. 꿈꾸던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에도 후회가 없고, 그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에는 더욱 후회가 없다.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발판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 방문했다가 ‘이 안에만 몇 가지의 직업이 있는 거지’하고 새삼스럽게 한 대 얻어맞은 듯 띵했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이 한 생에서 여러 직업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일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스물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 재미있고 설레고 부담스러운 일이 될 거다. 7년 전에는 방송작가였고, 3년 전에는 회사원이었고, 지금은 공무원인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그릴 때 ‘직업’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보통 어른이 되었다.


과거의 경험들을 다시금 되짚어보며 내가 꿈의 안과 밖에서 어떤 경험들을 하며 성장했는지 기록하고 싶어서, 나의 밥벌이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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