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이고 유익한 방송을 만들어내는 E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40여분의 다큐멘터리 3편을 만들어내는 팀이었다. 메인 구성원은 PD와 AD, 메인작가와 취재작가 총 4명이었는데, 1~2주에 한 번씩 회의를 위해 방문하는 메인작가님을 제외한 3명이 사무실로 매일 출근했다.
그 시절의 노트와 인터뷰 일정이 가득 적힌 달력
첫 엔딩 크레디트 타이틀로 ‘취재작가’라는 네 글자를 획득한 나는, 이미 정해져 있던 주제에 대한 논문, 책, 기사 등 가능한 모든 자료를 조사했고, 주제와 연관된 인물, 단체, 행사, 프로젝트 등 취재할 거리를 발굴했다. 촬영은 초반부터 이루어졌는데, 촬영을 하고 나면 취재작가에게는 추가 업무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프리뷰’. 촬영해 온 영상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일인데,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을 10초의 영상으로 풀어쓴다면 이런 식이다.
0000 카페 FS, 삼삼오오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로 노트북 앞에 앉은 여자 보이고
0004 여자 정면 WS, 멍 때리는 표정
0007 여자, 눈 질끈 감고 고개 도리도리 하더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림
0010 자판 두드리는 손으로 TD
앞의 숫자는 00분 00초, 1시간을 넘어가는 영상이라면 숫자는 6자리가 된다. WS, FS 등은 웨이스트 샷(또는 와이드샷), 풀샷 등 샷의 크기를 말하며, TD는 틸다운(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즉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한 약어다. 이처럼 카메라에 담긴 장면의 변화를 텍스트 화하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레귤러 프로그램의 경우 전문 프리뷰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들어간 팀은 프리뷰 또한 취재작가의 역할이었다. 프리뷰가 완성되어야 PD님과 작가님, 편집감독님께서 촬영분을 파악하고 편집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작 중반부 촬영이 많아지면서 나는 몇 개월간 월화수목금토를 9 to 22로 일하고 일요일은 내도록 집에서 잠만 잤다. 전문 프리뷰어에게 맡길 경우 제작비를 추가로 소요해야 했고, 내 프로그램이니 배운다 생각하고 열심히 프리뷰를 했지만 좀 미련한 사회초년생이었다. 후반부에도 쏟아지는 분량에 결국 몇 개의 영상은 전문 프리뷰어에게 맡겼지만, 내가 쳐낸 프리뷰만 한글 문서로 약 1,500페이지에 달했으니 가만히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아련하게 뒤통수 한번 쓰다듬고는 당장 프리뷰어 쓰자고 말해! 하며 등짝을 한 대 쳤을 거다.
나에게 프리뷰란 이토록 고단한 작업이었지만, 내심 좋아하는 프리뷰가 있었다. 바로 ‘인터뷰’다. 사실 인터뷰는 프리뷰어가 선호하는 영상은 아니다. 화면을 간단히 설명하면 되는 스케치 영상은 분량 대비 시간이 적게 걸리는 편이지만, ‘인터뷰’ 즉 질문과 대답으로 가득한 영상을 프리뷰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쉴 새 없는 타이핑이 필수로, 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다. (보통 프리뷰는 영상 분당 또는 문서의 페이지당 단가를 계산한다.)
하지만 나는 취재작가의 입장에서 프리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인터뷰어와 모니터를 통해 마주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인물에 대해 직접 자료조사를 하고, 일정을 맞추고, 간단한 질문 리스트가 포함된 촬영 구성안을 쓰는 동안,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은 출연자와 이미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영상을 풀어갈 때는 보통 본격적인 인터뷰 전후의 시간이 담기는데, 카메라가 켜지고 ‘어디 보고 이야기하면 되나요?’, ‘떨리네요’ 하며 심호흡을 하는 출연자를 보며 그 생생한 현장감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이윽고 질문과 함께 인터뷰가 진행되면 떨리던 목소리가 가라앉고, 각자의 생각을 풀어내는 모습도 멋지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전문가 인터뷰가 많았기 때문에 주제에 대한 지식면에서나 연륜에서 오는 지혜면에서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보통의 경우 두세 질문정도 지나고 나면 인터뷰어의 말버릇과 말할 때의 표정 등을 파악하게 되는데, 그렇게 상대의 말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나면 이해하며 프리뷰를 할 수 있게 되어 큰 도움이 된다. (말버릇의 경우, 프리뷰를 진행하면서 맥락에 따라 제할 수 있기 때문에 파악해두는 것이 유용하다. 물론 내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제작진이 원하는 바에 따르는 것이 좋다.)
생각해보면, 내가 인터뷰 프리뷰를 좋아한 건 결국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상 질문지를 만들며 떠올려본 답변들이 내 손을 통해 활자화되는 작업은 스물넷의 나를 성장시켰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프리뷰로 시작해 인터뷰로 끝나는 너무 아름다운다운다운다운 뷰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