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집

by 이새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입으로는 졸업식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교복이 연신 신경 쓰였다. 3년이라는 시간 나의 일부처럼 함께했던 교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운 오리 새끼처럼 체육복을 입고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게 어딘가. 건너 건너 이웃이 어렵게 구해준 커다란 교복을 입고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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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양을 세어보기도 하고, 억지로 눈을 감고 있기도 하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어 보기도 했다. 새벽 두세 시는 된 것 같았다. 다시금 잠을 청해보려고 애쓰던 그때, ‘따르르릉! 따르르릉!’ 고요한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예. 예. 우야다 그랬는교. 다친 사람은 없고예?”


방에서 주무시던 외삼촌이 거실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심상치 않은 질문을 이어가는 외삼촌의 목소리에, 얼른 일어나 불을 켜고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눈을 찌푸린 채 시계를 보니 아직 밤 열한 시 였다. 평소 얕은 잠을 주무시는 아빠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이미 깨어 계셨던 것 같다.


“무슨 일입니꺼?”


걱정스레 묻는 아빠에게 외삼촌이 수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너거 집에 불이 났다 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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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설 연휴를 맞아 청도에 있는 외갓집에 가 있었다. 거제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던 엄마는 오빠와 함께 명절 앞 대목 장사를 마치고서 설날 당일 외갓집에 올 예정이었다. 외갓집은 산 아래에 차를 대놓고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가거나 30여 분 경운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그곳은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외삼촌은 방에서 경운기 열쇠를 챙겨 나오셨고, 아빠는 어느새 외투를 챙겨 입고 있었다.


그렇게,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요란한 경운기 소리를 울리며 산길을 내려갔다. 황급히 차를 탄 아빠와 나는 청도에서 거제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며, 운전 중인 아빠에게 상황을 전했다. 엄마가 오빠와 슈퍼 문을 닫으려고 준비하던 그때, 갑작스러운 화재 소식을 접해 집으로 달려갔고 이미 손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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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세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다. 어둠보다 더 까맣게 타버린 1층의 우리 집은 한눈에 들어왔다. 따뜻하고 평온하던 보금자리가 새까맣게 변해있으니, 너무 낯설어서 할 말을 잃었다. 다행히 불은 진화된 상황이었고,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다만, 아직은 유독 가스가 머물러 있어 바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4층에 살던 이웃 아주머니께서 기꺼이 방 하나를 내어주셨고, 우리 가족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따뜻한 방 안에 둘러앉았다. 작별 인사를 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재회한 엄마는 혼자 모든 상황을 혼자서 수습하느라 많이 지쳐 보였다.


날이 밝고 찾은 집 문에는 폴리스 라인이 붙어있었다. 그 노오란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마주한 처참한 집의 모습은 하나의 클립처럼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됐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온전히 자기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TV 브라운관은 터져 한쪽이 깨져 있었고, 거실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도 까맣게 눌어붙었다.


조심스럽게 내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앞에 쌓여있던 교과서. 고등학교에 가면 사용할 새 교과서들이었다. 진화 작업을 하느라 물이 질척이던 바닥에 놓여있었으니 교과서는 울고 있었고, 겉면은 전부 그을려있었다. 새 교과서를 받은 그날, 가방은 터질 듯 무거워도 내 발걸음은 누구보다 가벼웠을 텐데.


그뿐인가. 교복과 옷은 전부 타버렸고, 오랜 시간 모아 온 좋아하는 가수의 CD는 표면이 녹아 서로 엉겨 붙어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매일매일 써두었던 일기장은 다행히 겉면만 그을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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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이 났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었지만, 방화로 추정하여 범인을 잡으려면 집을 그 까만 상태로 두어야 했다.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집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리였고, 부모님은 아마도 그 상황을 빨리 털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발화의 원인을 찾는 대신 우리는 본격적으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십여 년 차곡차곡 모아 온 살림살이 대부분을 버리고, 아직 쓸 만한 물건은 새까만 그을음을 닦아 나갔다. 이웃과 친척분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덕에 우리 가족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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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이후, 뉴스에서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 한 줄짜리 문장에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일상의 스위치가 멈춰버린 사람들. 절망하고, 체념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랜 싸움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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