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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Feb 09. 2021

산타는 것에 대하여

산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건 비밀인데, 등산을 할 때는 매번 힘들다. 그리고 이것도 비밀인데, 등산을 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힘들어 죽겠다가도 멋진 풍경을 만나면 발이 마음보다 앞서 걷기도 하고, 흐르는 땀 위로 시원한 바람 한 번 불어오면 없던 기운이 솟아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분량만큼의 힘듦을 오롯하게 내 발걸음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정상석에 표시된 서너 자리 숫자만큼의 높이에 오르는 일. 하나의 산을 오른다고 해도 길은 무수히 많고, 하나의 길을 오른다고 해도 사람마다의 방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산을 타면서 산다는 것에 대해 왕왕 생각하곤 한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진부한 발상일지 모르겠으나, 수없이 산을 오르면서도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가르침들이 있다.

명성산 억새 군락지의 일출. 등산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백패킹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20대 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다가 양산에서 처음 만나셨다고 했다. 목적은 영남의 알프스, 신불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첫 만남부터 등산이라니,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산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었구나 싶긴 하다. 그러나, 이건 30대에 들어서야 통하는 이야기이고, 어린 시절 나는 산에 가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주말만 되면 포동포동 살이 올라 곧 굴러갈 것 같은 딸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고 싶었던 우리 부모님은 항상 하산 후의 먹거리로 나를 유혹했다. 그렇게 주말 새벽 눈도 못 뜬 딸을 실어 산의 들머리*에 날랐고, 나는 매번 부모님을 힘들게 했다. 등산 10분 경과 시마다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고 갖은 짜증을 부렸던 내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신기하게도 나는 산을 사랑하게 되었다.

*들머리 : 사전적 정의로는 ‘들어가는 맨 첫머리’라고 하며, 보통 등산 시 시작하는 지점을 일컫는다. 종료지점은 날머리라고 부르며, 들머리와 날머리가 같은 경우를 원점회귀 코스라 한다.


가끔 아빠의 사진첩을 보고 놀라곤 한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렴풋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여름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2030 등산모임에 가입했고, 착실히 나가다 보니 운영진을 하게 되기도 하고 여러 명산들도 다녔다. 물론 나는 아직 가본 산 보다 못 가본 산이 더 많은 갓 눈을 뜬 산쟁이지만, 그래도 산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 졌다.

퇴근 후 야등 ! 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벅참이 있다.



예정에 없던 일이 장기화되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산은 매우 훌륭한 야외 운동 수단임에 틀림없지만,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운동 그 이상의 것을 주는 존재다. 등산 모임을 이끌어가면서, 등산을 처음 해보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나는 부디 그들이 경험하는 등산이 ‘아, 내가 다신 등산을 하나 보자’가 아니라, ‘아, 진짜 힘들어 죽겠는데, 또 가고 싶네.’가 되기를 바란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니까.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이 곳. 북한산 비봉의 코뿔소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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