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서림초지역 철거현장

by 살로메

나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길을 가을 햇살을 받으며 걷기로 했다. 주민들이 이주해야 하는 철거지역으로 서림초 주변을 걸어서 지나고 있었다. 부추꽃이 하늘거리는 작은 텃밭부터 주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화단의 모습이 정겹다. 포도나무, 대추나무, 무화과나무는 열매 없이 잎이 무성하고 감나무는 주홍빛이 한창인데 동네가 조용하다. 담장 없는 집들과 나무 사진을 찍으며 내가 인천으로 올라왔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떠오른다.


울산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나는 가족들과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는 외부 도시 빈민들이 자리 잡는 수도국산 꼭대기에 방을 얻었고 나는 송림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되었다. 겨울이면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매달리고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숨바꼭질하는 맛이 색달랐다.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옆집에 사는 사람들의 소리가 문밖으로 들리는 가난한 동네였다. 우리 3남매는 빙판길에 비료 포대를 끌고 썰매를 타던 철없는 아이들이었고 밤늦게까지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했다. 아이들이 많았고 담벼락이 없던 동네라 그만큼 안전하기도 했다.


엄마는 겨울준비로 연탄을 들여놓고 겨우내 먹을 쌀을 팔고 배추를 절여서 김치를 담갔다. 입은 많고 먹을 것은 귀했던 시절이라 우리 집도 30 포기 정도의 김장을 해야 안심이 되던 월동 준비였다. 이웃에 누가 왔다 갔고 뭘 해 먹었는지도 알만큼 서로 가까웠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주변 이웃과 사는 맛이 나는 훈훈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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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원도심의 단독주택들은 아파트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웃들이 오갔던 골목길은 사라졌다. 현수막이 나붙고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정책에 따라 짐을 싸고 떠나는 절차는 진행 중이다. 나는 집 밖에 버려지는 화분과 화초들을 집으로 가져와 키우고 있다. 그러나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과실수들은 이제 사라질 위기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집 앞 화단에 물을 주는 여인을 보며 편안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삶을 이어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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