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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May 30. 2019

엄마 없는 아이가 일궈낸 기적 같은 이야기

불행의 유전자를 행복의 유전자로 바꾸다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 너무 갓난쟁이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평생에 어머니는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단다. 엄마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몰라."


엄마 없이 자란 아이. 그 아이의 아버지이자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만 스무 살 때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출소 후에도 경찰의 감시는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망자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으셨겠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 아버지는 우연한 기회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죠.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말입니다. 가족에게 누가 될까 봐 억지로 꺼내지 않았던 옛이야기들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국회 도서관과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빛바랜 사진 한 장. 할아버지의 수감 사진을 끌어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소녀가 물어보더랍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이 사람이 누군지 아니. 우리 아버지야. 우리 아버지...”


저희 아버지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는 법도 모릅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 흔한 말을 아버지에게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들어보신 적 없으니 하실 줄도 모르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언제나 가족 곁에 계셨습니다. 나름의 방법으로 가족에게 정을 주셨습니다. 그 덕에 저의 유년 시절은 온통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가득했답니다. 팽이와 새총을 만들어 주시고,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무 썰매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죠. 주말이면 시골에 가서 함께 송사리를 잡거나, 약수를 떠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고요.






어느덧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기억 속에 항상 함께였던 아빠로 남자.’ 유치원에 가기 전에도 집에 있고, 집에 와서도 항상 있는 아빠.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아빠. 그래서 함께 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같이 놀아주는 그런 아빠로. 익숙한 그림이 아니었고, 딱히 배울 곳도 없었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하다 보니 됐으니까요. 서툴지만 조금씩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익혔고, 살아가는 중이랍니다.


어느 집안에나 나름의 불행이 있다고 하죠. 어떤 종류의 불행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서 계속 나타난다고 하고요. 누군가 끊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끊으셨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려우셨는지 평생에 걸쳐 몸으로 끊어내셨죠.


주말에 세 식구가 한강고수부지에 갔습니다.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 저 멀리 날려 보내고, 쫓아가서 함께 터트리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사라질 줄 모르는 함박웃음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평생의 노력이 결국 나를 통해 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불행의 유전자가 행복의 유전자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공유'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      





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대화와 글쓰기, 산책을 좋아합니다. 여러 회사에서 영업과 기획을 했고, 장사를 했고, 전국에서 토론모임을 열었습니다. 2019.6월, 개성을 주제로 한 책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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