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A.I에 대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이런 질문은 이제 단순히 철학적 논제를 넘어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감정, 생각, 창의력 등등 다양한 답변들이 논의되고 있는 와중 ‘사랑’이라는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영화 A.I 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원안을 이어받아 제작하였다.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는 최초의 감정형 아이 로봇으로 만들어진 데이비드가 엄마(모니카)의 사랑을 되찾기 위한 맹목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아 계속 움직이제 한 것은 <피노키오>의 줄거리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 <피노키오>에서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던 피노키오가 파란 요정을 만나 인간이 된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서 모니카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동화 속 이야기이다. 하지만 SF의 매력은 그런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데이비드는 각종 사고를 치게 되면서(주로 마틴, 모니카의 친 아들, 때문이긴 하지만) 모니카로 부터 버려지게 되지만, 이 또한 폐기 처분될 예정인 데이비드를 사랑했던 모니카가 숲에 버려둔 것이다. 테디와 함께 남겨진 데이비드는 <피노키오>의 이야기 속 푸른 요정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지골로 조라는 애인 대행 로봇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푸른 요정에 대해 알게 되어 자신을 만들어냈던 하비 교수를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데이비드의 기대완 달리, 인간이 되는 방법은커녕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바다로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우연히 그 바다 아래에서 푸른 요정을 발견하는 데, 이는 피노키오 테마로 지어진 놀이공원의 동상과 착각한다. 하지만 데이비드에겐 진짜 요정으로 보였고 결국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빌다가 2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다.
2천 년 후, 지구에는 외계인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빙하 아래 속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된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는 이들에 의해 발견되고 외계인들은 데이비드의 기억 메모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정신을 차린 데이비드는 자신이 지냈던 집과 똑같은 공간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외계인들이 만들어낸 가상공간이며, 그들은 푸른 요정을 보여주며 대이비드에게 DNA만 있다면 인간을 복원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마틴에게 속아 가위로 잘랐던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그들에게 건네주고 데이비드는 하루 동안 모니카와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데이비드는 그 하루 동안 모니카와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데 노력하고 결국 모니카로부터 “사랑한다. 데이비드, 너를 언제나 사랑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제야 데이비드는 그 행복한 기억을 갖고 영구 정지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향력이 상당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들을 영화에 담아낸다. 특히 하비 교수의 대사에서 그런 뉘앙스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Didn’t God create Adam love him?”과 같은 질문이다.
사실 영화 시작부터 인간의 감정에 대한 부분을 많이 강조한다. 모니카 가족이 데이비드를 입양하게 된 것도, 데이비드를 버리고 갈 수밖에 없던 것도, 데이비드가 마틴의 꾐에 빠져 사건사고를 일으킨 것도, 결국 모든 일들은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에 연관되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특히 중점적으로 다뤄지는데, 데이비드는 자식으로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로봇이다. 사랑을 하기에 동시에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 집착하고 맹목적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강력한 만큼 파괴적이다. 데이비드의 사랑이 어린아이 같아서, 사람 같아서 인간인 모니카의 맘에 들었지만 결국엔 기계이기에, 쉽게 데이비드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고 회피한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다시 모니카를 만나려고 한다.
인간이 되겠다는 아이가 아니고선 생각할 수도 없는 황당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사랑. 인류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그 사랑에 대해선 인류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예술, 문화에서 다뤄지는 주제이다. 사랑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이미 ‘Cogito ergo sum’이라 말하며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내며 철학의 시발점을 제창했다.
하지만 몇 세기가 지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미 생각이 흘러넘치고, 정보에 대한 의심과 불신, 관계에 대한 무책임과 같은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것들엔 사랑이 없다. 로맨티시스트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가족들의 일에 신경이 쓰이고 친구를 사랑하기에 친구의 사소한 일에도 걱정하고
연인을 사랑하기에 단점까지도 사랑하며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기에 사랑이 곧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의 행동이 어린아이의 것이라는 점을 빼고 생각한다면, 데이비드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역경들을 이겨내고 2천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모니카를 만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호의와 노력을 들여 영원한 하루를 만들어 내었다.
인간은 유한하다. 인공지능은 디지털 환경만 존재한다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아마 몇 년 뒤에는 기계적 신체구조를 갖고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는 존재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류가 동물들을 제치고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지능 덕분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지식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존재한다.
기계는 개념적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감정, 흉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에겐 있다. 이것이 있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 데이비드에 감정 이입해 영화를 감상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싶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설레는 등, 심장이 움직인다.
Amo ergo sum. Amo는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앞 단어만 바꾸었는데도 문장이 크게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우린 기댈 수 있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2천 년이란 시간을 인간인 우리는 이겨낼 수 없고, 피노키오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지도 않지만, 우린 데이비드만큼 사랑할 수 있다. 데이비드의 마지막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랑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적 상상력과 스필버그적 감성이 담긴 사랑 영화 A.I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