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

영화 <그래비티>

by 서로의 서재

SF영화들은 대부분 어렵다고 느낄 수준의 철학적 내용이나 논쟁 거리들을 주된 주제로 사용한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SF영화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장르적인 거부감을 야기하는 이유가 된다. 영화 <그래비티>는 그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영화이며, 그래서 더 여운이 남은 영화였다. 외계인도, 지구침공도 없이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인간의 발버둥이 그 어떤 것보다도 절실하게 다가 왔다. 영화의 전반적인 비주얼이나 스케일, 우주의 광활함과 공허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SF만의 매력은 그 안에 놓인 메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쓰고자 한다.


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주인공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로 인한 사고를 겪고 생존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스톤 박사 일행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던 도중 근처 러시아 위성이 미사일을 맞아 생겨난 잔해가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위성 잔해 폭풍이 스톤 박사 일행과 우주선 익스플로어 호를 덮친다. 스톤 박사는 이 충돌로 인해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게 된다. 다행히 베테랑 비행사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우주선에 복귀하지만 상황은 최악이다. 둘을 제외한 동료들은 파편으로 인해 전부 사망하고 우주선 익스플로어의 상태도 최악이다. 결국 그들은 남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ISS(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가서 소유즈호에 탑승해 지구로 복귀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비티3.jpg 왼쪽이 스톤 박사, 오른쪽이 코왈스키

서로의 우주복을 연결한 채 코왈스키의 추진 장치를 활용해 ISS로 향하기 시작하지만 곧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스톤 박사의 우주복에 산소 부족 알람이 울리고 코왈스키의 추진 장치의 연료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ISS 역시 위성 파편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소유즈도 이미 한 대는 승무원들이 사용한 뒤 였으며, 남은 한 대도 낙하산이 펼쳐진 상태라서 지구로 돌아가는데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ISS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도중, 외벽에 부딪히면서 둘의 연결선이 끊어지고 코왈스키가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나가는 것을 그녀가 붙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다리에 걸린 낙하산 줄이 느슨한 것을 알아챈 코왈스키는 자신을 놓아야 한다고 하며 그녀만이라도 생존할 수 있게 스스로 우주 공간으로 떨어진다.


ISS에 들어온 그녀는 통신을 시도하고 화재를 진압하던 도중,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 화재로 인해 급하게 소유즈로 피신한다. 코왈스키와 통신을 시도해보지만, 그와는 이미 통신이 두절된 뒤였고 그가 알려준 플랜을 회상하며 소유즈를 도킹 해제하고 근처 중국의 우주 정거장으로 향하려고 한다. 하지만 풀려져 있던 낙하산이 다시 그녀를 방해한다. 소유즈의 낙하산 줄이 ISS와 엉켜있어서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직접 나가서 낙하산 줄을 해체하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다시 돌아온 파편 폭풍으로 인해 ISS는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안도의 한 숨을 돌리던 그녀는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한다. 소유즈의 연료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비티6.jpg 태아의 모습을 한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

절망감에 휩싸인 그녀는 체념하며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도중, 코왈스키가 소유즈 안으로 들어오면서 삶을 포기하려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도와준다. 물론 이는 그녀의 환상이었지만 그 덕분에 중국 우주 정거장(톈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착륙용 로켓과 ISS에서 화재 진압하는데 사용했던 소화기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어 톈공으로 향한다. 드디어 톈공에 도착했지만 톈공도 파편과의 충돌로 인해 지구로 낙하하는 중이었고 중국어를 모르는 그녀는 우주선의 전체적인 구성이 미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용해 톈공의 소유즈를 타고 이판사판 지구로 떨어진다. 호수에 불시착한 소유즈에서 그녀는 물 속에서 탈출이라는 마지막 고난을 겪어내고 마침내 지구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래비티7.jpg 마침내 도착한 지구의 물과 흙.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나였다면 과연 저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였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항상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최근의 상황만 보아도 코로나, 가난, 굶주림, 질병, 노화, 사고, 재해 등 우리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위협을 매 순간 인지하지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안전'하기 때문이다. 발달된 과학기술과 사회적 제도 등으로 인해 우리는 상당한 위험들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환경적 조건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공간은 다르다.


영화 초반에 언급되는 부분이다. "지구로부터 600Km 상공, 기온은 125도와 영하 100도를 오르내린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도 없고 기압도 없으며,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 생명체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이런 환경에서 영화 속 위성 파편과 같은 재해를 만난다면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죽음과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주인공 스톤 박사는 수차례 위기를 넘어 생존에 성공했다. 그녀에 대해서는 영화 초반과 중반부에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데, 그녀는 딸의 죽음과 실패한 가정 생활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우주에 와서 뭐가 제일 좋냐는 코왈스키의 물음에 '고요함(Silence)'라고 답한다. 아마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우주의 고요함을 마음의 도피처로 삼았을 지 모른다. 반면에 코왈스키는 항상 말하길 좋아하고 자신 취향의 음악을 계속 틀어놓는다. 고요함을 깨는 그의 존재는 어쩌면 의도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그녀와 대비되게끔 소음과 움직임으로 '살아있음'을 계속해서 어필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둘이 살아남게 되면서 대비되는 구도가 더욱 선명해진다. 코왈스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스톤 박사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위협에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나 쉽게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라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침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네거티브한 감정에 보다 몰입되기 쉽다. 그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항상 선택의 순간은 다가온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상황에 매몰된 채로 있을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내려야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이 바로 코왈스키를 놓아줄 수 밖에 없는 스톤 박사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해."라는 그의 대사 한 마디도 사실 당장에 처한 상황에 대한 대답 뿐만 아니라 동시에 스톤 박사의 내면에 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비티8.jpg

그녀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아픈 과거의 기억들과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그녀를 향한 응원의 메세지인 것이다. 이후 그녀는 코왈스키의 계획에 따라 지구로 돌아가려고 한다. 지구로 돌아가려면 결국 중력, 즉 그래비티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중력은 우주의 무중력과 대비되면서 동시에 삶을 향한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장 좋아하던 우주의 고요함, 즉 무중력 상태에서 오는 고독과 편안함에서 벗어나 삶을 상징하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열망을 내비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을 헤쳐나가며 때론 좌절해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굉장한 비장함과 동시에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구에 떨어지면서 그녀는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멀쩡하게 내려가서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던가, 앞으로 10분 안에 불타죽던가. 어느 쪽이던 밑져야 본전이다. 어쨌든 엄청난 여행일 거야. 난 준비됐어." 이 대사에서 느껴진 것은 그녀가 삶을 향한 태도부터 달라져있다는 것이다. 어떤 결과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죽음까지도 각오한 그녀의 대사는 삶을 향한 그녀의 욕망을 잘 담아낸 부분이었다.


그녀는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호수에 떨어진다. 지구에서 무중력 훈련 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수중 훈련이라고 한다. 가장 비슷한 환경이기도 하고 지구 복귀 시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호수는 그녀가 새롭게 태어나는 장소로,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아픔과 생각들을 벗고(우주복이나 우주선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표현) 하나의 새로운 인간으로써 삶을 향한 의지를 갖고 세상에 나오는 태아처럼, 호수에서 최소한의 겉옷만 걸친 채 기어나온다. 지구의 흙과 공기를 느끼며 그녀는 일어나 앞으로 걷는다.

그래비티9.jpg

영화에선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지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들이 이후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만든 것이겠지만 분명한 점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지나온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당장 닥쳐오는 현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래와 과거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생물적인 본능에 의해 아프고 힘든 경험들은 다시는 하기 싫고 겪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우주의 무중력과 같은 공간으로 도피하려고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소음들을 차단한다. 이런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문제들을 외면하고 도피하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강해지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 수가 있다. 이 점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책에 나오는 유명한 말처럼 인간은 알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끊임없이 깨고 나와야 하는 존재이다. 이런 감상글을 쓰는 와중에도 대학교 학점이나 졸업, 스펙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떠나가질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런 걱정들이 자연스레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걱정을 떨쳐내고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다면 분명 기댈 곳 없는 불안한 무중력의 공간 대신, 내 두 발로 당당히 서있을 수 있는 땅과 자신을 지탱하는 삶의 중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mo Ergo 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