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순진무구한 욕망의 놀이터에서

내 멋대로 하는 <오징어 게임> 스포 및 분석

by 서로의 서재

주의! - 이 글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분석과 스포가 가득한 글이니 이 점 참고하여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징어 게임>의 첫 화를 보자마자 밤을 새워서라도 전부 다 봐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가감 없는 표현과 눈이 즐거운 배경, 그리고 매력적인 등장인물까지 왜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첫인상은 '추악할 정도로 솔직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돈 앞에서 무력해지는 456명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주인공 기훈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이 마냥 동떨어진 드라마 속 이야기라는 생각은 전혀 나질 않았거든요. 감상은 이쯤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에 앞서서 몇 가지 <오징어 게임>에 대해 미리 알아두어야 할 점들이 있는데요.


1. 오징어 게임은 1988년부터 2021년까지 33회 진행된 게임이다.(매년마다 진행되는 게임)

2. 오징어 게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에서 진행이 된다.

3. 오징어 게임의 상금은 VIP들의 후원으로 이뤄지며, VIP들은 어느 참가자가 우승할지 베팅한다.

4.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어린 시절에 자주 했던 놀이들로 진행이 된다.

5. 참가자들은 고액의 빚을 지고 있으며, 대부분 신체포기각서 등에 동의한 사람들이다.

6. 오징어 게임의 진행요원인 일꾼, 병정, 관리자들은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서로를 알지 못한다.

7. 진행요원들은 참가자들의 행위가 게임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행위도 용납한다.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호스트 오일남과 프런트맨 황인호(28회 오징어 게임 우승자)입니다. 두 핵심 인물 중 먼저 프런트맨 황인호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번 오징어 게임을 구상하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인호의 동생 준호가 형의 고시원을 탐색할 때 나왔던 책들 때문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욕망이론>과 함께 르네 마그리트, 반 고흐, 피카소와 같은 화가에 대한 책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우선, <욕망이론>. 라캉의 욕망 이론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이론입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오징어 게임과 연결해서 설명해보자면,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의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의식이 갖는 욕망인지, 사회가 갖는 욕망인지, 부모님이 갖는 욕망인지, 친구가 갖는 욕망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아와 주체성이 형성, 발달하는 데 있어서 타자의 존재가 필연적이며 그 타자와의 관계 형성, 타자와의 차이점들을 마치 거울 보듯이 확인함으로써 자신과 타자 사이를 인지하고 그 사이의 간극이 결핍이라는 감정을 야기합니다. 즉, 욕망과 결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고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한다는 것이죠. (이론에 대해 자세한 것은 따로 더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욕망을 갖는 시기는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아이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떼쓰고 울고서라도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고, 배고프면 뭐라도 먹어야 되고 졸리면 자는 존재는 어린이 밖에 없습니다. 이런 어린아이들일 때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로부터 우리는 인내나 노력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배우면서(혹은 주입당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죠. 어린이의 또 다른 특징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부족한 언어 표현 능력으로 인해 자신이 느끼고 본 것을 있는 추상적으로나 애매모호하게 전달하기 바쁘며 천 쪼가리를 어깨에 두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슈퍼히어로, 혹은 동화 속 공주가 된 것 마냥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황인호의 책상을 생각해봅시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반 고흐의 인상주의, 피카소의 큐비즘은 어린아이의 끝없는 순진무구함과 상상력에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고 보입니다. 순진무구함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동네 친구들과 하는 게임들을 오징어 게임에 넣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죠. 가장 순수하게 욕망하는 시기인 어린이일 때 즐겼던 게임 속에서 어른이 된 456명의 사람들이 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욕망의 대상을 두고 벌이는 생존 경쟁이 오징어 게임인 것이고, 이를 주최한 호스트와 VIP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재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수많은 빚을 지고 사회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모아 오징어 게임을 통해서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확인하려고 했을까요?

처음 언뜻 보기에는 현대사회의 무한 경쟁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했지만, 후반부로 드라마가 진행되어 갈수록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이자 진정한 주인공이라 생각되는 오일남은 죽기 전 기훈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아직도 인간을 믿나? 그런 일을 겪고도?"


오징어 게임에 모인 456명의 사람들은 앞서 말한 대로,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도움이 될 정도의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게임에 모였지만, 죽음의 공포를 직면한 뒤에는 그래도 당장 죽지는 않는 현실로 돌아가는 걸 선택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현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자신들이 했던 게임보다 더 잔인한 지옥이었고 그 지옥에서 자신들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인생이 있을 뿐이라는 걸 확인합니다. 결국 각자 자신들만의 이유를 갖고 오징어 게임에 돌아오면서부터는 참가자들 모두 상금 456억을 타겠다는 단순하지만 순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본능에 몸을 맡긴 상태가 됩니다.


폭력, 절도, 살인, 매춘 등등 인간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죠. 타인을 죽여야지만 자신이 살고, 돈이 있어야 자신이 살아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현실의 구조이니까요. 오징어 게임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극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확천금,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었죠. 목숨을 건다는 건 현실이나 이곳이나 마찬가지 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나오는 관의 모양이 선물함인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이렇게 오징어 게임은 도덕, 윤리, 법과 같은 사회 체계에서 벗어난 욕망의 세계입니다. 이런 무법지대 안에서는 폭력과 권모술수가 숨 쉬는 동안에도 일어나고 그 안에서 인간은 점차 변모하기 마련이지만, 주인공인 기훈은 조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아픈 어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온 오징어 게임에서도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 쌍문동의 자랑인 상우와 왠지 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001번 할아버지, 외국인 노동자로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은 알리, 그리고 탈북해서 온 까칠한 새벽까지 신경을 써서 챙기려고 합니다. 그래도 나름의 '사람다움'을 유지하려고 하는 인물인 셈이죠.

그가 이런 성격의 사람이 된 데에는 자동차 공장 파업 강제 진압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동료가 폭력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남은 사람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잘못도 있지만, 기훈은 아마 그때부터 돈 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신념 비슷한 것이 안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끊임없이 죽음과 직면해야 하는 오징어 게임 속에서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구슬치기 게임에서는 자신과 '깐부'가 된 오일남 할아버지를 폭력적으로 대한 것과 더불어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을 이용해 속여 구슬을 따냈고 징검다리 게임 이후에는 잠깐 졸고 있었던 상우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말린 것은 누구보다 사람을 믿지 않았던 새벽의 한 마디였는데요.


"그러지 마,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


죽어가던 새벽의 한 마디로 그는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다만, 자신이 자랑하고 다니던 상우의 추악한 본모습에 분노하여 그와 정면대결에선 모든 분노를 표출하는 듯해 보입니다. 상우와 기훈은 사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추구하는 이념이 상반되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는 둘이 징검다리 게임 이후 나눈 대화에서 알 수 있는데요.


"내가 살아남은 건 내가 살아남으려고 죽을힘을 다했기 때문이야." - 상우
"아무리 이유를 갖다 붙여봤자, 넌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거야." - 기훈


승자와 패자의 논리에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우라는 인물도 전형적인 우리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에 금융회사에서 60억이라는 큰돈을 주무를 만큼 능력도 인정받은 인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속한 인물이죠. 그래서인지 상우는 자신과 함께 돌아온 알리에게 먹을 것도 사주고 휴대폰도 쓰게 해 주고 차비까지 챙겨줍니다. 정작 자신은 모텔방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채로 자살하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진 존재이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타인을 이용하고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상우인 것이죠. 이런 상우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기훈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마지막 오징어 게임에서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과반수가 찬성하면 게임은 중단이 된다는 룰을 이용해 같이 현실로 돌아가려 하죠. 상우는 그렇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는 기훈을 보고선 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습니다.


그렇게 우승을 차지한 기훈은 456억이라는 돈을 차지하지만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부정의 감정들을 겪어낸 다음인 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그 사이에 돌아가신 것을 확인합니다. '돈을 벌어왔다'는 말을 해도 놀음했다고 의심도 하지 않고, 망가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는 눈물 조차 흘리지 못합니다. 그저 차디찬 시신을 애절히 끌어안을 뿐. 결국, 그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을 모두 잃어버린 대가로 456억이라는 돈을 얻게 된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합니다.


1년 뒤, 부랑자의 삶을 살던 기훈에게 자신의 깐부였던 사람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습니다. 그곳에 있던 건 구슬치기에서 죽은 줄 알았던 001번 할아버지, 오일남이었습니다. 그는 기훈에게 게임을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말합니다. 마지막 게임은 눈 오는 날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정각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내기였다. 일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오징어 게임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재미'때문이라고 밝혔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의 공통점이 삶에 재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라 말하는 그는 자신이 오징어 게임을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기훈을 살려주었던 이유도 단순히 그가 자신을 재밌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고요. 기훈에게 아직도 사람을 믿냐고 묻는 일남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삶에서 재미를 쫓는 사람이지만 그의 독특한 재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재미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리는 것입니다. 돈 앞에서 쉽게 사라져 버리는 윤리, 도덕, 인간성 등을 볼 때마다 그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죠. 자신은 절대 강요한 적이 없는 오징어 게임은 '인간은 믿을 것이 못 된다'라는 신념을 투영시킨 장치로, 호스트인 자신에겐 재미를, 우승자에겐 그에 대한 보상을 줌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기훈이라는 변종이 등장하여 게임 안에서 자신의 예상을 빗겨가며 자신을 재밌게 해 주어 흥미로움을 느꼈지만, 기훈마저 자신과의 게임에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한 기훈에게 게임을 신청한 것도 기훈이 자신처럼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인간을 믿지 않고 자신만의 이익을,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의 결과는 기훈의 승리로 돌아가는데요. 그와 동시에 일남은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기훈은 그가 틀렸다고 말하며 결심이라도 한 듯 붉은색의 머리를 하고 새벽의 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마음의 빚을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나마 갚고 미국에 있는 딸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오징어 게임으로 인도한 딱지치기 영업남을 보게 되고 그때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결국 미국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다시 오징어 게임에 뛰어듭니다. 그는 말합니다.


"잘 들어,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기훈은 더 이상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456억이라는 막대한 돈, 즉 힘이 생겼고(이를 머리 염색으로 표현, 오징어 게임의 관리자들의 색과 같은, 중간에 미녀가 언급한 매트릭스 속 빨간 물약 -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효능을 지님.)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다시 프런트맨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도 28회 오징어 게임의 우승자라는 것이죠. 그는 우승을 한 뒤에 고시원에서 지내다 다시 오징어 게임의 프런트맨으로 등장하였습니다. 기훈과 인호가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이렇게 상반된 입장과 생각을 갖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다음 이야기에는 이 둘의 본격적인 대립구도가 진행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기훈 - 일남 - 인호 이 세 사람의 인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밝혀질 것이고요(기훈, 일남 부자설 그리고 인호가 프런트맨이 되는 과정 - 아마 일남을 만나 기훈과 비슷하게 게임을 했고 거기서 패배하여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이다음은 솔직한 생각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순진무구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질 만큼 인간의 본성이 난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일남의 말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재밌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고, 혐오하고, 서로를 죽이려고 드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고요. 애초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기고 올라서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얼마나 잔악한 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 우선이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이나 생각은 고려하지도 않으면서 조금만 잘못해도 죽는 건 내 쪽이라는 사실이 사고를 멈추게 만듭니다.


이런 현대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편하고 그렇지 않은 쪽이 미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방향은 되어줄 순 있어도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주의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취해도 된다고 생각도 듭니다. 마치 상우가 그러했던 것처럼요. 욕망을 빼고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신이 처해 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그저 사회가 옳다고 말하는 것 대로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나요?

양면의 얼굴

아무리 선한 행동이라도 그 이면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한 행동은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교육'을 받은 것이지 그것이 '진리'는 아니니까요. 인간의 모든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럴싸한 것들을 붙여놓는 것이지,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 뜨렸을 때 성인군자처럼 행동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기부나 봉사활동을 해서 얻는 개인적인 뿌듯함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다면 그것 이외의 명예나 칭찬, 사회적 인센티브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럴 사람도 없을 겁니다. 굳이 자신이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힘든 일을 계속할 사람이 많이 있다면 성인(聖人)이라는 칭호도 없었을 겁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절대적인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덕수나 미녀 같은 인물들이 악하다고 한다면 생존을 위하는 모든 행동들도 악으로 규정되어야 할 겁니다. 배신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버림받을까 봐 몸과 마음을 다 줘서라도 버림받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그들의 악한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진 않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우리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도 각자만의 상황 속이기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그에 의해 따라야 한다는 강제력, 당위성을 지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이죠.


어떤 이념적이거나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고 그 추악함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규범이나 가치가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불편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짜인 드라마 속에서 각자만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 이런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점들을 느꼈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걸 느꼈나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넥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