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 완전 우리 얘기다] <자화상> 시리즈 첫 번째 영화

by 서로의 서재

"네 인생영화는 뭐야?"라는 질문에서 많은 걸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영화취향 부터 삶의 가치관 같은 것들을 단 하나의 질문에서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영화 같은 인생을 한 번 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질문일 수도 있고, 내 인생 같은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만의'인생영화'를 찾아 헤메는 건가 봅니다.


[그 영화, 완전 우리 얘기다]는 제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책의 제목이면서 언젠가 누군가와 만나서 인생영화 이야기를 할 때 한 번 쯤은 들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각자 주연을 맡은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스쳐지나가는 조연으로 서로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주연 배우로 나오는 영화를 언젠가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좋은 음악도 함께 페어링 해드리겠습니다.


<자화상>이라는 건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그려낸 그림인데요. 일종의 '자기인식'의 장치로써 자기 스스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자화상과 닮아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그냥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느끼고 있어'라고 속 편하게 털어놓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엔 자기자신을 조금 더 따스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럼 이쯤에서 영화 <소공녀>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솜 주연 영화 '소공녀' 포스터 위주 이미지 (고화질).jfif (출처: 핀터레스트)

주인공 미소는 사랑하는 웹툰작가 지망생 남자친구(한솔)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한 잔의 위스키만 있다면 행복하다 생각하는 프로 가사 도우미입니다. 친구 집에서 쌀을 빌려오고, 지하철 대신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기엔 너무 춥기만 한데요. 한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선택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돈.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담뱃값과 월세값은 왜 오를까. 결국 그녀는 가계부를 끄적인 끝에 자신의 집을 포기하는 해결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추운 겨울에 나온 그녀는 대학시절 밴드 멤버였던 친구들의 집에서 지내보기로 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요.


쉬는 시간도 없이 수액을 맞아가며 일해야만 하는 대기업 회사원, 문영

당차던 성격 죽이고 팍팍한 시댁살이로 눈치보며 살기 급급한 현정

이혼 위기에 매일 밤 술 없인 잠을 못자고, 아파트 대출금을 20년 동안 갚아야하는 대용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노총각 록이에게 강제청혼 당하고 집에서 탈출하기도 하고

부잣집에 시집가서 살고 있는 정미의 이중생활을 목격하는 등, 파란만장한 여행을 하게됩니다.


그 사이에 남자친구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간다는 소식을 미소에게 전하게 되고 마지막까지 한솔의 웹툰작가의 꿈을 응원하면서 배웅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새하얀 눈처럼 변한 그녀는 여전히 글렌피딕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마시며 한강 공원에 텐트에서 지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bsTChnV9E

(어쩌면 아티스트 - 소공녀/출처: 미러볼 뮤직 유튜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소공녀: microhabitat>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표현입니다. 주인공 미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산다고 볼 순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죠. 좋아하는 것들,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미소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스한 사람입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누구보다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주었던 건 다름 아닌 미소였으니까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한 건 5년 전 부터 였는데요. 시작은 수제맥주 였습니다. 여름방학 부터 수제맥주와 함께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군대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인디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건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건 생각보다 스스로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언젠가 친구가 나중에 꿈이 뭐냐라고 물으면 저는 진심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연어덮밥이랑 하이볼을 먹으면서 집에서 마샬 스피커로 음악 듣고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잠에 드는 거"라고 답했습니다. 지금도 제 삶의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원하는 삶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해야만 했습니다. 미소의 대학교 밴드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 시간 사이에 저도 어쩌면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영화에서 미소가 먹었던 글렌피딕은 싱글몰트 위스키인데요. 뜬금없이 글렌피딕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블렌디드 위스키가 주류였던 위스키 시장에 싱글몰트 위스키로 도전장을 던진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란, 간단하게 말하면 단일 증류소에서 원료인 맥아로만 만든 위스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미소는 항상 혼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죠.

IMG_1505.JPG?type=w773 영화 속 배경이었던 코블러Cobbler

저 또한 프로혼술러로써 위스키에 도전해 볼 겸, 코블러에 갔었습니다. 이곳에서 미소가 위스키 한 모금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옅은 미소를 띄게 되더라구요. 혼술은 혼자이기에 그 매력과 그림자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웃으면서 놀고 싶을 때도 있고 술기운을 빌어다가 털어놓지 못했던 일들을 토해내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나를 타인에게 드러내고 위로 받고 싶다는 욕망만큼, 누구도 온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한 거란 허무함의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어쩌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건 오로지 나 뿐이라는 생각이 혼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혼자서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스스로를 돌이켜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녹아드는 것 뿐이었습니다.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을 떠올릴 때면 입 안에 털어넣는 위스키 한 잔이 건네는 진한 위로가 온갖 걱정들을 날려주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것일 테지만 '내가 무엇으로, 혹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는, 정확히는 할 수도 없는 게 현실 같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이나 평가에 우린 너무 쉽게 흔들리고 말죠. 내가 들어간 대학, 취직한 직장의 연봉, 사는 집의 시세와 평수 등이 과연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요. 삶의 목적이 '기계적인 효율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행복해지는 것에 조건이 있다면, 그리 많고 거창한 조건이 붙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막연히 남들이 하라는대로, 남들이 가는 길이니까 따라가는 것이 아니, 우린 각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려는 노력이, 즉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게 아닐까요. 영화 속 미소의 삶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적절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내고 이를 지켜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 그리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아무리 추운 현실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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